[NEWS] 10년만의 내한 공연 ‘류이치 사카모토’

피아노의 詩人… 침묵을 녹음하고, 달이 내는 소리를 듣는 남자

내달 10여년 만에 한국 오는 류이치 사카모토 “피아노 두 대 ‘가상 듀엣’…
한 대는 내가, 한 대는 컴퓨터가 연주”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드뷔시의 환생(還生)이라고 생각했다.” 세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유치원 시절 ‘토끼 키운 경험’을 곡(曲)으로 표현했던 류이치 사카모토(58)는 최근 국내 출간된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사카모토는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며 “드뷔시를 만난 것이 그만큼 큰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정신적 스승은 바흐다. 그가 내년 1월 한국에 온다. 10년여 만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일본식 이름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다. 서양에서 먼저 유명해지는 바람에 성과 이름의 순서가 바뀐 채 널리 알려졌다. 20년째 뉴욕에 살고 있는 이 일본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는 지난 2000년 처음 내한공연을 가졌다. 그가 내년 1월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두 번째 내한무대에 오른다. 현재 일본에서 투어 중인 그를 지난 4일 히로시마 알소크 홀에서 만났다.

“다시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자 그가 다시 눈을 맞추며 “아, 그렇습니까?”라고 말했다. 10년 전 서울에서 인터뷰했을 때 희끗해지기 시작하던 그의 머리카락은 어깨에 찰랑거렸었다. 이제 백발이 된 그의 머리는 많이 짧아져 있었다. 그는 “세월 참 빠르죠” 하더니 “이제 (노안 때문에) 안경도 씁니다”라며 웃었다.

이탈리아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1987) 음악으로 아카데미와 그래미, 골든글로브를 모두 거머쥔 그는 영화음악가로 널리 알려졌다. 1970년대 말 세계 전자음악을 이끈 일본 트리오 ‘YMO(Yellow Magic Orchestra)’ 멤버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Energy Flow’를 비롯한 피아노 솔로의 대히트는 그에게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는 엉뚱한 이름을 달아주기도 했다.

“일본에 올 때마다 프로모터에게 한국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왜 10년이나 못 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실무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오키나와 무대에 아직도 못 선 것과 비슷한 이유 같아요.” 그는 오키나와 민요를 도입한 펑크(funk) 곡 ‘Neo Geo’를 비롯해 오키나와 문화에서 크게 영향받았으나 정작 이 일본 최남단 무대에는 아직 서지 못했다.

사카모토는 현재 일본 여가수 오누키 다에코(大貫妙子)와 함께 투어 중이다. 내한공연에서는 혼자 무대에 오른다. 2008년 내놓은 음반 ‘플레잉 더 피아노(Playing The Piano)’ 수록곡 위주로 연주한다. 유럽과 미국 투어에 이은 이 공연에서 그는 혼자 피아노 2대를 연주한다.

“제 어떤 곡들은 굉장히 복잡하고 전자음이 많아 피아노 한 대로는 연주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제가 한 대를 연주하고, 미리 프로그래밍해 둔 컴퓨터가 나머지 한 대를 연주합니다. 나 자신에 의한 가상의 듀엣이라고 할까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연주되는 피아노는 건반과 페달이 스스로 움직인다. 사카모토는 “다음번엔 건너편 피아노에 내 홀로그램이 앉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줄까 생각 중”이라며 웃었다.

1983년 해체 후 90년대 초 재결성됐다가 다시 깨진 YMO는 최근 두 번째 재결성돼 활동 중이라고 했다. “첫 번째 재결성 때는 곧 후회했어요. 분위기가 아주 나빴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재결성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했죠.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서 아주 조금 더 현명해졌어요.”

그는 콘서트를 기다리는 한국 팬들에게 이렇게 감사를 전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과거 일본이 한국에 한 일을 잘 알고 있고 저도 죄책감을 느낍니다.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사과하고 싶어요. 그런데 늘 많은 한국인이 저를 지지해줘서 항상 놀랍니다. 저 같으면 최소 7대(代)에 걸쳐서 일본을 미워할 텐데 말이죠.”

한국에는 “사카모토 같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젊은 뮤지션들이 꽤 많다. 그는 “장르에 상관없이 모든 음악을 들으라”고 충고했다. “클래식과 팝뿐 아니라 새 우는 소리와 바람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뉴욕에서 달과 구름이 만날 때 나는 소리를 상상하곤 했어요. 아프리카에 갔을 땐 너무나 고요해서 그 침묵을 녹음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녹음했더니 녹음기 모터 소리만 들렸지만 말이죠.”

사카모토의 음악이 때로 난해한 것은 언제든 음표와 박자를 뛰쳐나가는 그의 상상력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에는 한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음악에서 한계를 본다면 그것은 당신이 만든 한계입니다. 그것을 깨부숴야 합니다.”

자서전에서 사카모토는 고교 때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너는 사형수이며 사형집행자다”라는 글을 연애편지랍시고 주곤 했다고 고백했다. 독서광이었던 사카모토군(君)은 이제 환갑을 앞두고 있다. 그는 시인이 되어 침묵을 녹음하고 달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공연 문의 (02)599-5743

출처: 조선일보  2010. 12. 7

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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