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사랑과 병의 분석

모든 본능 중에서 사랑이야말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스러운 본능이며, 근본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치유할 길없는 도착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강력한 충동은 단일물이 아니라 본래 여러가지가 합쳐진 것으로, 사실 그러한 충동도 전체적으로 보면 정상적이지만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순전히 도착적일 뿐이다. 그러나 개별적인 구성요소가 도착되어 있다고 해서 전체가 도착되어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이므로, 정상적인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것의 일부는 개별적으로 도착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영혼의 저항이며 조정으로 품위 있고 질서정연한 본능이라는 것이다. 조정하고 절제하는 능력이 있는 이러한 본능의 영향으로 도착된 요소들은 정상적으로 유용한 전체에 융합된다. 더구나 이는 빈번하게 일어나는 환영할 만한 과정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의사나 사상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반면 다른 경우에는 이러한 과정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그 과정이 성공을 거두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성공을 거두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이 경우야말로 더 고상하고 정신적으로 귀중한 경우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이 경우 두 가지 힘의 그룹, 즉 사랑의 충동과 이에 적대적인 본능, 특히 수치심과 혐오감이라는 통상적이고 시민적인 정도를 넘어서는 이례적인 긴장과 열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의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이 양자의 투쟁은 도착된 충동을 울타리에 넣고 가두고 안전하게 순화시키는 것을 방해해, 그 결과 통상적인 조화와 정상적인 애정 생활을 막는다.

순결의 힘과 사랑의 힘이 충돌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충돌은 얼핏 보아 순결의 승리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 점잖음, 정숙한 혐오, 벌벌 떨면서 순결을 지키려는 마음이 사랑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사랑의 욕구를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허용할 뿐, 그것이 극히 다양한 모습으로 힘차게 의식 속에 떠올라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결의 이러한 승리는 외견상의 승리에 불과하고 피루스의 승리이다. 사랑의 욕구는 억제하거나 억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억압된 사랑은 죽은게 아니라 살아 있어서 오히려 마음속의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호시탐탐 욕구를 실현하려고 노리면서, 순결의 금지령을 어기고는 모습을 바꾸어 식별할 수 없는 모습이긴 하지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 허용되지 않고 억압된 사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모습과 가면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병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병의 증상은 가면을 쓴 사랑의 활동이며 모든 병은 모습을 바꾼 사랑입니다!”

– ‘마의 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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