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하이힐에 대하여_남자들은 왜 하이힐을 포기한 것일까?

도발적이고, 아름답고 섹시하고…. 하이힐은 수세기 동안 여성성(性)과 글래머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하이힐은 한때 남성에게도 필수품이었다.
물론 실용적이지는 않다. 하이킹이나 자동차 운전에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종종 여성들은 잔디밭에서나 울퉁불퉁한 돌로 덮인 인도(人道), 얼음 위에선 하이힐을 벗으라는 권고를 받는다.

하이힐은 걷기 용이 아니란 말인가?
실제로 하이힐은 ‘걷기’용으로 시작한 신발은 아니었다.

25일 BBC 방송에 따르면, 뒤축(heel)이 달린 신발은 페르시아 같은 중근동에서 기마(騎馬) 전투의 필수품으로 시작했다. 등자(?子)에 신발을 고정하고 서서 활을 정확히 쏘는 자세를 취하기 위해선 힐이 달린 신발이 최적이었다.

이 뒤축 달린 신발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말. 페르시아왕 샤 압바스 1세는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기 위해 러시아와 독일, 스페인 등의 유럽 각국 조정에 외교사절들을 보냈고, 이들 페르시아 신사들은 이 뒤축 달린 신발을 신고 왔다. 당시 유럽에선 페르시아풍(風)이라면 뭐든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정력적이고 남성적인 ‘엣지(edge)’를 찾던 유럽의 귀족들에게 이 힐 달린 신발은 바로 이목을 끌었고, 점차 저층민에게 번짐에 따라 상류층은 앞다퉈 힐의 높이를 올렸다. 사실 17세기 유럽의 진흙투성이에 마차 바퀴자국이 깊숙이 팬 도로에서 힐 달린 신발은 별로 효용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 ‘비실용성(impracticality)’이 포인트였다. 사회적 신분이 과시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비실용성’이었다. 유럽의 상류사회는 늘 자신의 특권 계급의식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치스럽고 불편하고 비실용적인 의상을 착용했다. 그들은 밭에서 일할 일도 없었고, 어차피 오래 걸을 일이 없었다.

이 하이힐은 프랑스의 루이 14세 태양왕의 주목을 받는다. 그는 1.63m로 단신이었다. 그는 힐의 높이를 10cm 늘여서 자신의 키를 높였다.

그의 신발창과 힐의 색깔은 늘 빨간색이었다. 당시엔 염색이 값비싼 사치였고, ‘전투적’인 이미지도 전달했다. 이 새로운 패션은 영국으로 건너갔고, 1.85m 였던 영국의 차알스 2세도 프랑스풍의 빨간색 뒤축 달린 신발을 신었다.

1670년 루이 14세는 자신의 조정에 속한 이들만 빨간색 힐을 신을 수 있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결국 왕의 총애를 받는지 알려면, 눈을 내려서 그 사람이 신은 신발과 뒤축의 색만 체크하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높은 뒤축 달린 신발은 남성 전용(專用)이었다.
그러나 곧 여성들이 당시 패션 바람을 따라, 남성 패션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여성들도 당시엔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옷의 어깨에 ‘군복’을 연상케 하는 견장을 달기 시작했다. 남성상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시작한 페르시아의 하이힐도 곧 여성들이 신기 시작했다.

BBC는 이후 17세기 말까지 사실상 유럽의 신발 패션은 남녀 공용(unisex)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역전(逆轉)’현상이 일어난다. 남자들의 뒤축은 굵고 넓적해지고 낮아진 반면에, 여성들의 신발 뒤축은 더 날씬해지고 굴곡이 들어간다. 여성들의 신발 앞부분이 치마 밖으로 드러날 경우 발을 작게 보이게 하기 위해 뾰족해지면서, 뒤축도 늘씬해진 것이다.

반면에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번지면서 남성들의 신발은 더욱 ‘실용적’으로 변해간다. 영국에서 귀족들은 시골 별장·장원을 관리하기에 편리한 실용적이고 단순한 복장을 선택하게 됐다. 이 시기는 역사상 ‘남성 대절제(the Great Male Renunciation)’의 시기였다. 남성들은 보석을 착용하고, 밝고 화려한 옷을 입은 대신에 어둡고 칙칙하고 보다 균일한 모양의 옷을 입게 된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의상이 사회계층을 구분 짓는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의상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당시 시대 조류(潮流)에선,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처럼 ‘교육되기도 쉽지 않다’고 간주됐다. 남성들은 하이힐이 어리석고 유약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1740년쯤 되면, 남자들은 더 이상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여성들이 하이힐을 버린 것은 그뒤로도 50년이 지나서 프랑스 혁명 시기였다.

사라졌던 하이힐을 다시 살린 것은 19세기 중반 사진가들이었다. 사진가들은 새 기술인 사진술을 이용해, 처음엔 도색(桃色)카드에 하이힐을 신은 나체의 여성들 사진을 싣기 시작했다. 사진과 다시 결합하면서 하이힐은 여성에게는 성적 자극을 부추기는 ‘장식품’이 됐다고 BBC는 전했다.

그럼 이제 남자들이 다시 그 좁은 신발과 아슬아슬한 높이의 뒤축에 그 커다란 발을 쑤셔넣을 일은 없는 것일까.
BBC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하이힐이 파워의 상징이 되는 순간, 즉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면, 남성들은 다시 여성들처럼 하이힐을 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전에 성의 균등(均等) 현상이 먼저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남성용 하이힐 / 사진=데일리메일 캡쳐

출처_조선일보_20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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