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모닥불

모닥불의 불길을 바라보면서, 준코는 무엇인가를 문득 느꼈다. 뭔가 깊이가 있는 것이었다. 어떤 기분이 뭉친 덩어리라고 해야 좋을까, 관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인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준코의 몸속을 천천히 달려 빠져나갔고, 그리운 것 같은, 가슴을 옥죄는 것 같은, 이상한 감촉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그것이 사라진 후 한참 동안 그녀의 팔에는 소름 같은 것이 돋아 있었다.

“아저씨, 가만히 불의 모양을 보고 있다가 이따금 이상한 기분 같은 거 느낄 때 없으세요?”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들이 평소 생활에서는 특별히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이 이상하게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든가 하는 거 말이예요, 뭐라고 할까… 머리가 나빠서 잘 표현하진 못하겠지만요, 이렇게 불을 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참 평화로운 기분이 돼요.”
미야케 씨는 곰곰이 생각했다.
“불이라는 건 말이야, 그 형태가 자유롭지. 자유롭기 때문에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엇으로든지 보이거든. 준코가 불을 보고서 평화로워진다면, 그건 준코 속에 있는 평화로운 마음이 거기에 비치기 때문이야. 그런 걸 이해할 수 있겠지?”
“네”
“하지만 모든 불이 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불 모양이 자유롭지 않으면 안 돼. 가스스토브의 불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거든. 라이터 불도 마찬가지야. 웬만한 모닥불도 안돼. 불이 자유로워지려면 그렇게 되기 위한 공간을 이쪽에서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리고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 무라카미 하루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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