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릭 오웬스 인터뷰

버슬이 들어가거나 사선으로 떨어지는 가죽 재킷, 공기처럼 몸을 가볍게 감싸는 니트 아이템들, 헐렁하게 끈을 풀어헤친 운동화…릭 오웬스는 10여 년 동안 자신의 시그니처를 확실히 다듬었고, 극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옷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전 세계 5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서울에 오픈하는 그를 파리에서 만났다.

우주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몽환적이면서도 모던한 쇼가 끝난 다음날. 릭 오웬스는 자신의 아틀리에와 집이 함께 있는 팔레 부르봉으로 초대했다. 화려한 장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태프들은 전날 쇼 의상과 액세서리를 정리하느라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이트와 블랙, 그리고 그레이만 존재하는 무채색의 공간에서 스태프들은 행어를 정렬하고, 한 켠에선 옷을 풀었으며, 커다란 블랙 테이블 위로 신발들을 잔뜩 쌓았다. 릭 오웬스 아틀리에는 아주 고요할 거란 예상은 들어맞았지만, 차가운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파리 본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판매와 생산과 관련된 본사는 이탈리아 쪽에 있기 때문에 이태리어와 불어, 그리고 영어가 여기저기서 뒤섞여 들려왔다. 테일러링이 멋진 수트를 입은 이탈리아 남자들과 릭 오웬스 특유의 축 늘어지는 니트와 가죽 재킷을 입은 프랑스 디자인팀은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반갑게 눈인사를 건넸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그니처 컬렉션을 시작한 릭 오웬스는 2002년, CFDA의 ‘New Talent Award’를 수상하며 패션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2003년, 파리로 무대를 옮긴 그는 곧 가죽과 모피, 그리고 니트를 훌륭하게 다루는 디자이너로 유명해지며 마니아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특히 수학자처럼 직선과 곡선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는 테일러링 실력과 길고 가는 실루엣, 그리고 과감하고 치밀한 디테일은 그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70년대 언더그라운드 팝(이기 팝, 데이빗 보위 등)을 즐겼던 그는 자연스럽게 당시 문화에서 받은 그런 지적인 영감과 브랑쿠시를 비롯, 주목할 만한 현대 작가들과 교감하며 그들로부터 받은 모던한 아이디어를 믹스해 독특하고 컨셉추얼하면 서도 구조적인 의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올봄 컬렉션에선 화이트와 블랙, 다양한 톤의 그레이에 실버 컬러를 포인트로 더해 미래적인 무드를 더했다. 정확히 계산된 듯하지만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보디 수트와 날카롭게 떨어지는 가죽 아우터, 낙하산처럼 붕 뜨는 옆 실루엣이 인상적인 코트 등은 그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줬다. 〈뉴욕 타임스〉는 ‘컬트 디자이너’로 불리던 그가 주류 세계로 들어왔다고 평했으며, 〈WWD〉는 릭 오웬스가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라고 표현했다.

다크 초콜릿 컬러의 쿠션이 놓인 넓은 소파에 앉아 전날 컬렉션 의상을 다시 한번 리뷰하고 있을 무렵, 건장한 체격의 릭 오웬스가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걸어왔다. 캐리커처를 하기에 너무 좋은 개성 넘치는 외모를 지닌 그의 모습은 여전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탄탄한 근육질의 새까맣고 반들거리는 몸을 보면 도대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의 머릿결은 인디안처럼 윤기가 흘렀다. “와우! 반가워요!” LA 출신의 그는 혀에 버터를 바른 듯 부드러운 미국 서부식 영어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며 반갑게 악수를 권했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섬세한 디자이너의 손이 아니라 운동 선수처럼 아주 단단하고 힘이 느껴지는 손이었다. 어제 쇼가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늘 오후에 이곳을 방문할 바이어들과 프레스들을 맞을 준비로 한창 분주한 이곳 대신 옆 방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커다란 하얀 창으로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곳은 릭 오웬스의 4가지 라인이 모두 걸려 있는 쇼룸이었다. 가죽 재킷이 베스트 아이템인 ‘릭 오웬스’ 시그니처 라인, 실크와 면 소재의 저지 아이템이 주류인 ‘릴리스(Lilies)’ 라인, 그리고 데님 라인인 ‘다크쉐도우(DRKSHDW)’ , 모피가 중심인 ‘팔레 로얄(Palais)’ 라인까지 상징적인 그의 의상들이 쇼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운데 놓인 가로로 긴 그레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마주보고 앉았다. “뭘 좀 마시겠어요?” 라고 릭 오웬스가 물었다. “난 커피를 좀 마셔야겠군요.” 커피를 기다리며 그는 의상 라인을 하나씩 설명하다가 창 밖을 내다보곤 다시 자리를 옮기자고 권했다. “파리 햇살을 즐기지 않겠어요? 별로 춥진 않죠?” 그는 테라스에서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며 앞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웬만한 격투기 선수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건장한 체격의 그가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모습이란! 우린 함께 테라스로 나와 키 작은 초록빛 식물들이 심어진 담장 아래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 어제 쇼가 끝났는데 피곤하지 않나요?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해서 좀 놀랐어요.
RICK OWENS(이하 OWENS)_하하. 걱정해줘서 고맙군요. 사실, 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는 타입이에요. 벌써 다음 시즌 컬렉션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루 전날 컬렉션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죠. 누구처럼 쇼 전까지 재봉틀을 돌려 퀵으로 배달하거나 백스테이지에서 장식을 덧붙이는 일은 절대 없어요. 쇼가 있던 어젠 낮잠도 자고 튈리르 정원도 산책했는 걸요?

– 그럼 컬렉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OWENS_물론 초기엔 스트레스가 많았죠.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디자인 작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건 전체적으로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컬렉션을 앞두고는 조용한 환경에서 차분하게 있으려고 해요. 그리고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죠. 꾸준히 운동하면서 건강도 관리하고요. 앗, 미안해요. 커피가 좀 식은 것 같군요. 다시 내려 마셔야겠어요. 커피는 따뜻해야 제 맛이죠(그는 다시 긴 머리를 찰랑이며 아틀리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당신이 테라스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권한 이유를 알겠어요. 담 밖으로 보이는 파리가 너무 아름답군요.
OWENS_이 집은 한때 공산당이 사용하던 건물이에요.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집의 구조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인테리어는 별로였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콘크리트를 다 뜯어내고 모든 걸 싹 바꿨어요.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도 계속 바꾸는 중이고요. 아직 손댈 곳이 많답니다. 1층은 디자인팀을 위한 공간이고, 2층은 제가 청동・대리석・나무 등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공간이에요. 맨 위층인 5층엔 저와 제 아내가 살고 있답니다. 저만의 ‘팩토리’라고 부를 만한 건물이죠.

– 일터와 집을 한 공간에 두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OWENS_전혀! 일 역시 제 사생활의 일부니까요. 라이프스타일 전반이 제 디자인에 반영되고 있어요. 창의적인 작업의 핵심이 되죠.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면, 아래로 내려와 스케치를 한답니다. (이때, 누군가 꼭대기 층의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헬로우!” 를 외쳤다). 아, 제 아내 미셸 레미예요. 내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준 여자죠. (갑자기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지금 인터뷰하고 있어요. 당신 거기서 뭘 해요?” 아내가 “뭔가 만드는 중이에요!”라고 대답하자 둘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 집은 일 년 내내 인테리어 중이죠.

– 파리에서 사는 건 어떤가요? 당신의 고향인 LA와는 전혀 다른 도시잖아요.
OWENS_부모님이 여전히 LA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가끔씩 들르곤 해요. 2001년, 헤비용(Revillon)으로부터 제안 받은 후(2007년 그는 헤비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그만두었다), 아내와 함께 파리로 이사하자고 결정했죠. LA와 파리를 오가는 비행기만 타면서 시간을 보낼 순 없었으니까요.

– 그럼, 당신이 가장 머물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요??
OWENS_저의 이상적인 장소는 도빌이에요. 마르셀 프루스트가 지낸 곳으로 유명한 카부르(Cabourg)는 제게 최고의 곳이죠. 수많은 아름다운 해변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또 베니스의 리도 섬도 아주 좋아합니다. 아주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고 집을 사려고도 했었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죠. 그곳에 살았다면 엄청나게 자주 여행을 해야 했겠죠? (커다란 손으로 제스처를 더하며 얘기하던 그는 인터뷰에 함께한 한국인 바이어가 입고 있던 니트 카디건에 시선을 멈췄다) 그런데 이거 내가 디자인한 옷이에요? (바이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하하. 그랬군요. 혹시나 했어요. 사실 내 니트 카디건만큼 많이 카피된 옷이 없어요. 가끔 길을 가다가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도 ‘내 옷인가?’ 할 정도죠. 〈뉴욕 타임스〉에선 내 가죽 재킷이 얼마나 많이 카피되었는지를 다룬 기사가 있었어요. 하하. 하지만 제 생각엔 가죽 재킷이 아니라 이 니트 카디건이 더 많이 카피되는 것 같아요.

– 아, 그 기사 기억나요. 당신이 패션계에서 가장 많이 카피되는 디자이너라는 언급도 있었죠. 사선으로 떨어지는 여밈과 지퍼 디테일 등 상징적인 요소들에 대해 언급했었죠?
OWENS_맞아요. 그렇게 많이 카피된다는 건 어떤 면에선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처음 니트 컬렉션을 선보인 건 2002년이었어요. 골지로 되어 소매 부분을 약간 길게 하고 앞 라인이 툭 떨어지도록 만든 니트였죠. 사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카피하는’ 시대예요. 패션쇼 사진이 공개되면 그 다음날 세계 어디선가 똑같이 카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죠. 각진 어깨의 재킷이 유행하기 시작하자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한 옷이 카피되어 나왔죠.

– 하지만 아무리 카피나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이 많이 나와도 릭 오웬스 마니아들은 분명한 취향을 지켜나가죠.
OWENS_’패션 팬’ 들이죠. 그들은 아무리 많은 카피가 나와도 절대 다른 아이템을 사지 않습니다. 사실 쇼핑은 또 하나의 ‘신성한’ 행위예요. 정교하게 세공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름다운 공간을 감상하고, 환상적인 음악을 들으며 자신에게 딱 맞는 아이템을 고르죠. 그리고 멋진 박스에 조심스럽게 포장된 그 아이템을 들고 나올 때, 꿈을 꾸는 것 같지 않나요? 아웃렛에서 쇼핑하는 이유는 이해합니다. 아웃렛 쇼핑에 대해 평가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전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 싶지 않아요. 쇼핑할 때면 기꺼이 그 가격을 다 지불하고 싶어져요. 쇼핑을 둘러싼 모든 과정은 갤러리나 박물관에 들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 합니다. 아웃렛이 아니라 진짜 그 디자이너의 매장에 들어가서 모든 문화적인 것을 경험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 당신이 매장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OWENS_가장 적합한 콘크리트를 만들어내면서 인테리어를 시작해요. 콘크리트는 날것의 거친 느낌이 나지만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부드럽게 발전시킬 수 있죠.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가구가 들어가면서 각각의 공간은 특별한 에너지를 갖게 되죠.

–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건축가나 예술가가 있나요?
OWENS_콘크리트에 관심이 많아서 브루탈리즘 건축(50~60년대에 선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콘크리트나 철제 블록을 사용한 건축 양식)에 관심이 많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 있는 당시의 건축물은 정말 압권입니다. 그리고 최근엔 베니스 비엔날레를 통해 알게 된 러시아 아티스트인 안드레이 몰로드킨(Andrei Molodkin)에 푹 빠져 있어요. 정치적이면서, 보는 이를 움직이게 만드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아주 영민하게 담을 줄 아는 작가죠. 어딘가 모호하게 표현하지만, 신기하게도 그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입니다. 또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표현해내죠. 그의 작품을 접한 후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 그럼 당신을 자극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는요? 어제 패션쇼엔 가레스 퓨가 온 걸 봤어요.
OWENS_가레스 퓨는 아주 흥미로운 디자이너예요. ‘파리’라는 패션 가문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그를 지원해주고 있죠. 저 역시 파리에 처음 왔을 때 낯선 것 투성이였으니까요. 디자인을 하면서도 옷을 직접 만들 줄 아는 젊은 디자이너는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스스로 완벽하게 마무리할 줄 알죠. 우선, 그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어요. 패턴을 어떻게 만들고, 그 옷이 어떻게 만들어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은 디자이너로서의 기본 자질이니까요. 게다가 아주 예의 바르고 창의적이며 결단력이 있죠.

– 런던에서 주목 받는 신인 디자이너인 그가 파리로 왔을 때 이슈가 되었었죠.
OWENS_런던은 정말 많은 디자이너를 배출해내요. 패션 위크에 수 많은 이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죠. 새로운 기회를 주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아주 짧은 주기마다 디자이너들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바로 관심 밖으로 벗어나니까요. 지금도 수많은 의상학과 학생들이 졸업해서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을 거예요. 가능성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 지금은 ‘릭 오웬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떤 상징적인 룩을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과거엔 당신 역시 LA의 신인 디자이너였죠.
OWENS_LA에서 제 옷을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면서 만족하며 살고 있었죠. 어느 날 이탈리안 회사가 저를 찾아와 옷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더군요. 당시 제 나이가 마흔이었어요. 결코 이른 시작은 아니었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 절대 제 이름을 라이선스처럼 팔지는 않겠다는 조건이었어요(그는 팔짱을 끼고 아주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들은 아주 호의적이었어요. 대부분의 패션 회사처럼 여러 차례의 미팅을 거치지 않았고, 제가 만드는 의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죠.

– 이제, 당신처럼 LVMH나 PPL같은 거대 패션 그룹이 아닌 독자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지켜나가는 디자이너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OWENS_드리스 반 노튼, 꼼 데 가르쏭 정도 될까요? 몇몇 디자이너 밖에 남지 않은 것 같군요. 지금처럼 이렇게 옷을 만드는 것에 만족합니다. 제 디자인에 완벽하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지금 이순간이 좋습니다. 수많은 목소리와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릭 오웬스만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브랜드만의 가치를 존중하게 되었죠.

– 당신이 처음 패션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OWENS_다들 비주얼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핫한 셀레브리티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좌지우지되고 있어요. 모든 정보가 순식간에 대중들에게 노출되죠. 또 광고 캠페인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촬영한 사진에 인공적인 리터칭을 더하죠. 그런 가시적인 것을 뛰어넘는 가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그런 의미에서 어제 선보였던 쇼는 릭 오웬스만의 특징에 어떤 환상적인 요소를 더한 느낌이었어요.
OWENS_‘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하되 뭔가 진보된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음악부터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모델들의 워킹까지 말이죠. ‘릭 오웬스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아주 간결한 모노크롬을 시도했죠. 그리고 그것을 부드러운 방식으로 제안하고 싶었어요.

– 어제 쇼에 나온 뱅글도 직접 디자인했나요?
OWENS_아닙니다. 이번 쇼에 뱅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뉴욕의 주얼리 디자이너인 아브라삭스 렉스(Abraxas Rex)에게 부탁했어요. 원시적이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의 주얼리를 만드는 그가 제 컬렉션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뱅글을 만들어줘서 멋진 포인트가 될 수 있었어요.

– 그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어우러진 컬렉션이었어요.
OWENS_고마워요. 젊었을 땐 패션쇼에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넣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하나씩 덜어내 정제된 완벽한 정수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우선, 하얀 조명으로 옷에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고, 음악을 고르는 데 꽤 오랜 시간을 투자했죠. 결국 고른 음악은 데이빗 보위가 77년에 발표한 ‘Heroes’의 느린 버전이었어요. 같은 노래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울 정도죠. 친구들조차 그 음악은 패션쇼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고, 쇼가 끝난 후엔 역시 음악에 대한 반응이 반으로 나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번 쇼를 준비하면서 이 음악을 듣고 완벽하다고 생각했죠.

– 평소에도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인가요?
OWENS 피트니스 클럽은 제게 새로운 나이트 클럽이죠. 하하.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할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 4월에 오픈할 당신의 서울 도산공원 앞 스토어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커요. 어떤 음악이 나올지도 궁금하네요.
OWENS_저는 새로운 숍을 오픈할 때마다 각각의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직접 만들고, 전체적인 인테리어를 마무리합니다. 1층엔 저의 컬렉션과 더불어 영감을 받는 CD와 책 등을 함께 선보일 생각이고, 2층에는 모피 라인을 위주로 구성할 예정이에요. 당장이라도 서울에 가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되지 않아 사진을 보며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습니다.

– 릭 오웬스의 모든 것이 압축된 공간이겠군요. 지금도 패션이 마법 같은 힘을 지녔다는 걸 신뢰하는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듭니다.
OWENS_맞아요. 나 역시 ‘패션 팬’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뭔가 특별한 마법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내가 마법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니까요. 파리, 런던, 도쿄, 뉴욕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할 때마다 항상 마법처럼 완벽한 장소가 나타나곤 했어요. 모든 장소에 직접 방문해서 거기에 딱 맞는 분위기를 각기 다르게 만들어낼 수 있었죠. 오픈을 앞두고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즐겁습니다(파리 매장엔 마담 투소의 밀랍 인형을 만드는 조각가에게 의뢰해 실제 자신과 똑같은 조각을 세워놓기도 했다).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군요.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당신의 팔목에 있는 앤틱한 골드 뱅글은 구입한 건가요?
OWENS_하하. 이건 프라다예요. 처음 보는 순간 반해서 사게 되었죠. 마법처럼 매혹되었죠. 서울에서 릭 오웬스의 새로운 매장을 찾는 사람들 역시, 마법에 빠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테라스에서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오니, 스태프들은 바이어와 프레스들을 맞을 준비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모델들이 워킹할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독특한 유선형 그래프를 만들어내던 올봄 의상들을 구입하려는 수많은 바이어들로 이 쇼룸은 가득 채워질 것이다. 릭 오웬스가 직접 배웅해준 커다란 철문을 지나 세느 강을 건너 콩코드 광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 머릿속에도 릭 오웬스만의 이미지가 분명하게 입력되었다. 그것은 그의 말처럼 마법에 빠진 순간이었다.

출처_VOGUE
2010. 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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