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조선시대 ‘공부의 신’ 14명 선비들의 평생 공부법

작가 김병완(43)씨가 최근 ‘선비들의 평생공부법’을 펴냈다. 이 책은 조선시대 ‘공부의 신’ 14인의 공부 비결이 담겨 있다. ‘공신’은 정약용, 이황, 이이, 조식, 박지원 등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쟁쟁한 인물들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천재들의 학습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다시 공부를 해보려고 하는 중노년에게도 호응이 크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읽은 책은 사서삼경으로 대표되는데, 이 책들은 흔히 ‘문사철(文史哲)’로도 불리는 인문학 계열이기 때문이다.

저자 김병완씨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 책을 썼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11년간 근무하다가 작가로 전업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느 날 문득 “과연 이렇게 살다 가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온종일 책만 읽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기를 3년, 이른바 ‘책 읽기의 임계점’을 돌파한 후 직장인에서 작가로 성공적 전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 6개월간은 책을 그냥 읽었으나 점차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해가면서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이 방식이 다산 정약용의 초서법과 비슷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재작년 12월에 나온 ‘현자들의 평생공부법'(김영수 저)이라는 책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책에는 공자부터 마오쩌둥(毛澤東)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공부법이 소개돼 있다. 김병완씨는 “우리 조상들의 공부법이 더 휼륭하고 효과적이었는데 왜 이런 책이 없는지 화가 나서 내가 써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저자는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의 대가로 정약용을 꼽는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학문세계가 넓고 깊을 뿐만 아니라 정밀하기까지 해서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다산의 공부법은 ‘초서법(쇠 금+적을 소書法)’이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베껴 쓰는 것은 ‘필사’이지만 다산은 필사가 아닌 중요한 내용을 골라 뽑아서 기록하는 공부법을 선호하였습니다. 이것을 ‘초서’라고 말합니다.” 다산의 기록하는 공부는 마오쩌둥의 독특한 공부법과 매우 닮았다. 마오쩌둥은 “붓을 움직이지 않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다산의 공부법은 세종대왕의 공부법인 ‘백독백습(百讀百習)’과도 닮았다. 아버지 태종이 책을 주면 세종은 그 내용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손으로 기록하였다고 한다. 세종은 ‘사서삼경’을 비롯해 어떤 책이든 밤을 새워 가며 읽고, 한 번 읽을 때마다 동시에 한 번을 쓰고 ‘바를 정(正)’자를 표시해 나갔다. 중요한 것은 세종이 이것을 열 번이 아닌 백 번을 하였다는 것이다. 세종의 공부법은 백 번 읽고 백 번 쓰는 공부법인 ‘백독백습’이다. “다산과 세종의 공통점은 책을 읽으면서 손을 움직여 필기를 하였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기록하는 공부법이 조선 선비들의 대표적인 공부법이라고 말했다. 윤증 역시 기록하는 공부인 ‘차기(箚記)공부’를 강조한 케이스. 윤증은 공부하다가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기록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기록해 놓으면 다시 그것에 대해 궁리를 하게 되고, 언젠가는 스스로 그 이치를 터득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조선 최고의 ‘공부의 신’은 누구일까? 과거시험 결과만 놓고 보면 율곡 이이다. 율곡은 아홉 번이나 연속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렸다. 저자는 율곡의 공부법을 숙독 공부법으로 정의했다. “율곡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통달해야 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여 몸으로 실행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음으로 체득하고 몸으로 실행하면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인생이 달라진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저자는 다만 율곡의 공부법은 오늘날에 맞게 변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당시와 달리 지금은 참고할 책이 많고 구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작가와 학자의 주장과 의견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책 한 권을 숙독하고 통달할 정도로 깊이 파는 것보다는, 다양한 주장과 견해를 펼치는 여러 방면의 책을 섭렵한다면 사고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이이와 함께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이황의 반복 공부법도 눈여겨볼만하다. “퇴계 선생의 공부법은 세상과 단절하고 오롯이 책에 몰입하여 읽고 또 읽는 반복 공부였습니다. 그는 어떤 책을 읽더라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완전히 깨우치기 전에는 그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들에 요동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했으니 그의 학문이 동년배보다 앞서 나간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퇴계는 아들 준(雋)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부하는 것을 거울을 닦는 것에 비유했다. “매일 거울을 깨끗하게 닦는 사람은 거울 닦는 것이 힘들지 않을 뿐더러 항상 깨끗한 거울을 쳐다볼 수 있습니다. 공부는 이렇게 매일 거울을 닦듯 해야 한다고 퇴계는 말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실용적인 분야의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박지원은 실용 공부법이 특징이다. “연암 선생은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이용되거나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학문이 아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공과 출세, 재테크, 혹은 자기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연암은 달랐다. “연암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공부보다는 은택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이 만세에까지 전해지는 공부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조로(早老)현상이 심하다.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인생 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명 조식의 사례에서 배울 점이 많다. “조식 선생은 예순한 살에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해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덕산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조선시대에 그 나이에 새롭게 공부하겠다고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둔재가 아닐까 고민하는 사람은 김득신이 좋은 사례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독서가는 백곡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득신은 명문 사대부가에서 태어났지만 소문난 둔재여서 글도 또래보다 늦게 배웠다. 백곡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않은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끈기였다. “그 덕분에 그는 59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할 수 있었고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터득하는 기간이 남보다 몇 배 혹은 몇십 배 더 길었지만 그럼에도 나중에는 높은 경지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이 일화를 통해 책 읽기의 정직한 효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덕무(1741~1793)도 손꼽히는 독서가였다. 이덕무는 평생 읽은 책이 2만 권이 넘었다. 이덕무는 규율 공부법이 특징이다. “이덕무의 공부법은 규칙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독특한 것은 똑같은 책을 ‘다섯 번씩’ 읽는 공부법이었습니다. 정독한 후에는 반드시 느끼고 깨우친 점을 기록하였습니다.” 기록한다는 점에서 이덕무의 공부법은 다산의 공부법과 다르지 않지만, 다섯 번씩 횟수를 정해 놓고 정독한다는 점에서는 다산보다 더 규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덕무는 글 읽는 횟수와 시간을 배정하고 어릴 때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배정된 시간을 지켜 정해진 횟수만큼 글을 읽었다고 ‘사소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더 특이한 사항은 배정된 시간을 넘어 더 읽거나 덜 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즉 그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횟수만큼만 책을 읽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몸이 아파 책을 읽을 수가 없을 때가 아니면 절대로 이러한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열네 명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효과적인 공부법을 갖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지독하게 공부했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이 좋은 사례다. “다산의 공부법이 아무리 좋다 해도 지독한 노력이 없었다면 그는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의 노력을 잘 알려주는 이야기가 ‘과골삼천(발 족+열매 과/骨三穿)’입니다.” 다산의 제자인 황상은 일흔 살이 넘어서도 책 읽기와 초서를 멈추지 않았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 연세에 이르기까지 고되게 책을 읽고 베껴 쓰시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내 스승님은 귀양지에 18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복사뼈)이 세 차례 구멍이 났다. 스승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가르쳐 주신 말씀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한데, 내가 관 뚜껑을 덮기 전에 어찌 그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김병완씨는 우리 사회의 중국 사대주의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공자가 주역 읽기를 좋아해서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성어는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대단한 내용인 ‘과골삼천’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조선일보
201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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