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생하고 거대할수록

“만약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언제까지고 소멸하지 않고 나이를 먹는 일도 없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그래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이것저것을 생각할까요? 요컨대 말이에요, 우리는 많거나 적거나 여러 가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요? 철학이라든가 심리학이라든가 논리학 혹은 종교, 문화 등에 대해서요. 그러한 종류의 복잡한 사고나 관념이라고 것은, 만약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요컨대 자신이 언제가는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요? 정말 그렇잖아요? 언제까지고 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누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만일 가령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까.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생각하면 되니까.’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죠. 우리들은 여기에서, 이 순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내일 오후 나는 트럭에 치여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무엇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필요한 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생하고 거대할수록 우리는 필사적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 하루키, ‘태엽감는 새’ 중에서

Advertisements
이 글은 ARTICLE 카테고리에 분류되었습니다. 고유주소 북마크.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