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깊고 어두운 동굴 바닥에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픔


그는 의자에서 자세를 가다듬고 얼음물을 한 모금 마셨다. 남은 건 고요한 슬픔뿐이었다. 가슴 왼쪽이 뾰족한 칼에 베인 듯 아릿해져 왔다. 뜨끈한 피가 흐르는 느낌도 들었다. 아마도 그건 피일 것이다. 그런 아픔을 느낀 것도 오랜만이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친밀했던 네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처음일지도 모른다. 그는 눈을 감고 물에 몸을 누이듯이 아픔의 세계를 떠돌았다. 아픔이 있는 편이 그래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 위험한 건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다.

온갖 소리가 하나로 섞여 귀 저 안쪽에서 ‘찡’ 하는 날카로운 잡음을 일으켰다. 끝도 없이 깊은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수한 소음이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건 없다. 자신이 장기 안쪽에서 만들어 낸 소리다. 사람은 누구든 그런 고유의 소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눈을 떴을 때, 세계의 형태가 얼마간 변해 버린 것 같았다. 플라스틱 테이블, 하얗고 단순한 커피 잔, 반쯤 남은 샌드위치, 왼쪽 손목에 걸린 오래된 자동 태그호이어 시계, 읽다 만 석간신문,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 점점 밝아져 가는 건너편 가게의 쇼윈도.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일그러져 보였다. 윤곽이 뿌옇게 흐려져 입체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축척도 잘못되었다. 그는 몇번이나 깊이 숨을 들이쉬고 조금씩 안정시켜 갔다.

그가 느끼는 마음의 고통은 질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다. 질투가 어떤 것인지, 쓰쿠루는 안다. 꿈 속에서 한번 생생하게 체험한 적이 있다. 그때의 감각이 지금도 몸에 남았다. 그것이 얼마만큼 숨 막히게 하는 것인지, 얼마나 구원할 길이 없는 것인지도 안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것은 애절함이었다. 깊고 어두운 동굴 바닥에 홀로 남겨진 듯한 슬픔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단순한 슬픔에 지나지 않는다.

–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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