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일곱 시 반의 야구장

어린시절 나는 야구장의 외야석 위쪽에 앉아 여름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태양은 이미 서쪽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지만 그 자리에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노을이 남아 있었다. 조명등 그림자는 무언가를 암시하듯 그라운드 위로 길게 뻗쳐 있다. 경기가 시작되면 조심스럽게 조명이 켜진다. 그러나 주변은 여전히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를 밝다. 오래 쬔 햇볕의 기억이 여름밤의 도래를 입구에서 막고 있다.

그러나 인공의 빛은 참을성 있고 차분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태양의 밝기를 능가해간다. 그럼에 따라 주변에는 축제적인 색채가 넘쳐난다. 잔디의 생생한 푸름, 새까맣고 멋진 땅, 그곳에 그려진 새하얗고 곧은 선, 타순을 기다리는 타자의 방망이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니스, 광선 안을 떠도는 담배 연기(바람이 없는 날 그것은 장착할 곳을 찾아 유랑하는 도깨비 무리처럼 보인다.) 그런 것들이 뚜렷하게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맥주를 파는 소년들은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는 지폐를 빛에 비춰보고, 사람들은 높은 타구의 행방을 보기 위해 일어나서 볼의 궤적에 맞추어 소리를 지르거나 한숨을 쉰다.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새들이 작은 무리를 지어 바다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일곱 시 반의 야구장이다.

– 하루키, ‘태엽감는 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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