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가난과 외로움… 우리의 破格을 만들었다_패션디자이너 듀오 ‘빅터 앤 롤프’

취향·나이·고향까지 같은 둘… 무대에서 옷 직접 입히거나 톱으로 자르는 등 기발한 쇼
“돈 없던 시절 넘치던 아이디어… 우리를 만든 건 8할이 결핍”

이들을 키운 건 8할이 ‘결핍’이었다. ‘빅터 앤 롤프(Viktor &Rolf)’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이고, 여기서 나오는 옷과 향수, 안경은 명품(名品)으로 불리지만, 정작 이를 일궈낸 두 사람은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우린 가난했고 외로웠다. 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그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빅터 호스팅(Horsting·44)과 롤프 스뇌렌(Snoeren·44). 이 동갑내기 두 남자는 네덜란드 시골 마을 출신이다. 네덜란드 패션학교인 아른헴 예술학교(Arnhem Academy of Art)에서 만나자마자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고”, 졸업 후 1992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1998년 첫 번째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제 두 사람은 “가장 영리한 천재 듀오” “기발한 쇼맨십으로 무장한 패션 크리에이터”로 불리지만, 정작 이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목표”라며 미소 짓는다.

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편집매장 ‘분더샵 앳 마이분’에서 빅터와 롤프를 만났다. 같은 안경, 비슷한 옷차림. 둘 다 수줍음을 많이 탔지만, 자리에 앉아 질문을 건네자 눈빛이 달라졌다. 단어를 세심하게 골랐고, 대답 한 마디에도 열심이었다. 이들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정상(頂上)의 디자이너가 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20131119-135604.jpg
①1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난 빅터와 롤프. 왼쪽이 롤프고, 오른쪽이 빅터다. 키도 생김새도 비슷해서 얼핏 쌍둥이처럼 보인다. ②1999년 봄·여름 컬렉션. 과장된 주름과 극적인 겹쳐입기를 보여줬다. ③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 빅터와 롤프가 무대에서 모델 옷을 직접 갈아입히고 있다. ④2007년 컬렉션. 모델이 조명과 음향 장치를 어깨에 걸고 나와, 옷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⑤2008년 가을·겨울 컬렉션. 옷에 새긴 ‘NO(안돼)’라는 문구는 지나치게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 산업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 /성형주 기자, 분더샵 제공

―패션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네덜란드 출신 디자이너다. 어릴 때부터 어렵게 패션 잡지를 구해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들었다.

“우리 둘 다 시골 마을의 남자 형제만 있는 집에서 자랐다. 우연히 보게 된 패션 잡지는 우리에게 환상 그 자체였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그 화려한 세계 속 일부가 되길 꿈꿨다. 독일 TV에서 보여주는 패션 프로그램도 열심히 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땐 우리가 대체 뭘 하고 싶어하는지도 몰랐던 게 분명하지만(웃음).”

―처음 만나자마자 함께 패션 디자인을 하게 될 거라고 느꼈나?

“그건 아니다. 다만 1학년 때부터 매일 같은 수업을 들었고, 금세 알게 됐다. ‘이런 친구는 다신 없다’는 것을. 우린 운명처럼 움직였다.”

빅터와 롤프는 1993년 남부 프랑스 이에르에서 열렸던 ‘국제 아트&패션 페스티벌’에서 주요 상을 3개나 차지했다. 이때 이들이 내놓은 건 여러 벌의 재킷과 셔츠를 해체해 만든 거대한 부피의 옷이었다. 롤프는 “네덜란드 촌놈들이 파리에서 얼마나 외롭고 가난하고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커다란 옷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때의 위축된 마음을 오히려 위로했던 것도 같다”고 했다.

―처음엔 패션쇼가 아닌 전시로 시작했다. 가령 딱 다섯 벌의 옷만 무대에 걸려 있고, 수퍼 모델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녹음해 음악처럼 틀어놓는 식이었는데?

“알다시피 우린 밑천이 딱히 없었다. 돈이 없다 보니 늘 같은 크기의 패턴과 옷감으로만 옷을 만들었다. 쇼를 할 여력이 안 됐다. 고민 끝에 시작한 게 전시였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으면 모델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녹음해서 틀었다. 패션 기자에겐 ‘빅터와 롤프는 파업 중’이라고 적힌 엽서를 돌리며 우리 이름을 홍보했다. 궁핍했기에 오히려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1998년부터 시작한 쇼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디자이너가 무대에서 모델에게 직접 옷을 입혀주거나, 전기톱을 들고 나와 드레스 일부를 무대에서 잘라내는 식이었다.

“우리에게 패션은 언제나 옷(garment·衣) 이상의 것이었다.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한 것이 무엇일지 늘 고민했다. 남들과 똑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한 패션쇼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위악적으로 자신을 우상(icon)처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다. 억지로 계산했다기보다 필요해서 했다. 마땅히 다른 사람이 없어서 직접 다 작업했고, 때론 무대에도 섰다.”

―옷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때도 종종 있다. 가령 ‘안 돼(NO)’라는 글자를 새긴 드레스를 보여주는 식으로.

“가끔 패션 업계의 숨 막히는 스케쥴과 피상적인 화려함에 치여 힘들 때가 있다. 그런 속마음을 옷으로 풀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패션쇼를 끝내고 나면 다시 행복이 찾아온다. 뭐랄까, 우리에게 쇼는 일종의 치료(therapy)이고 치유(healing)이다.”

―옷은 파격적이지만 작업 스타일은 조용한 것 같다.

“암스테르담 사무실에서 일한다. 같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스케치한다.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고 요가를 한다. 파티에도 잘 안 간다. 우린 다만 집중하고, 만든다.”

―가장 좋아하는, 혹은 가장 질투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면 누굴까?

(롤프가 웃으며) “나는 빅터.” (빅터가 웃으며) “나는 롤프. 하하, 우리에겐 참 당연한 말이다.”

출처_조선일보
2013. 11. 18

Advertisements
이 글은 BRAND STORY, INTERVIEW 카테고리에 분류되었습니다. 고유주소 북마크.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