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잊고 있던 감수성

대량 생산을 전제로 디자인할 때 내가 특히 중시하는 것이 소재감이다. 즉 상품을 성립케 하는 소재를 충분히 살피고 파악하는 데 의식을 집중한다.

꼴과 색을 경시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지금까지 디자인은 너무 꼴과 색이라는 알기 쉬운 요소로만 운운되어 왔다. 꼴에는 그걸 지탱하는 소재가 있다. 그리고 소재에는 천연의 색이 있다. 그런 것들의 관계를 무리가 없도록 배치함으로써 물건 속에 기품이 생겨난다.

요즘의 경향이지만, 우리 주변 잡다한 물건들의 재질감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가?

종이가 그렇다. 인쇄용지를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력이라고 하면 하얗고 반짝거리는 아트지에 풍경사진 같은 것을 인쇄하는 것이 대세였지만 요즘은 똑같은 풍경사진은 인쇄하더라도 지질이 폭신하고 종이 본래의 촉감을 살린 것이 많아졌다. 다시말해 인쇄 재현성보다는 완성된 상품으로서의 품위와 촉감을 중시하게된 것이다. 제지기술의 발전도 이런 경향을 뒷받침하여 결이 있는 종이에서도 적당한 인쇄 재현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 주변의 종이들은 부드러운 촉감을 빠르게 되찾고 있다.

외면적인 스타일이나 색채 변화만큼 화려하지 않고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도 없지만, 최근 얼마 동안은 소재나 감촉에 대한 감수성이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숙해져 왔다.

감촉이라는 것을 일반적으로는 감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수세미는 보기만 해도 그걸 만졌을 때의 감촉을 연상케 하고, 울 스웨터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맡았던 냄새의 기억은 울이라는 소재감과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갓난아기는 주위 물건을 전부 혀로 핥아서 확인한다고 하는데, 역시 소재에 대한 감수성이란 오감을 총동원해서 얻는 것이 아닐까.

– 하라 켄야, ‘포스터를 훔쳐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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