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HEDI HAS IT_패션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 인터뷰

디올 옴므에서의 6년 동안 에디 슬리먼은 새로운 남성들을 세상에 탄생시켰다. 그리고 갑자기 패션을 떠난 그는 사진가로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동시대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명확하고 특출한 비전을 지닌 진정한 크리에이터 에디 슬리먼이 〈보그 코리아>에 인터뷰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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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계가 그를 처음 만난 건 1998년 봄, 이브 생 로랑 리브 고시 옴므 패션쇼였다. 1997년부터 YSL 옴므를 위해 디자인하고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세계 최고의 에디터들 사이에 새로운 패션 천재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 모델들의 피날레 워킹이 끝나는 순간, 백스테이지로 향하는 문에서 기다란 아스파라거스를 떠올리게 하는 키 크고 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한 발짝 앞으로 그의 등을 떠민 건 이브 생 로랑을 패션계의 전설로 만든 피에르 베르제. 억지로 떠밀려 무대 앞에 선 채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하고 금세 사라진 그 젊은 디자이너의 이름은 바로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일 년 후, 톰 포드와의 마찰로 인해 YSL을 떠난 그는 다른 제안들을 뒤로 한 채(프라다는 그에게 질 샌더를 제안했었다) 디올 옴므에 안착했다.

그곳에서 슬리먼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남성상을 탄생시켰다.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몸매에 무표정한 얼굴, 덥수룩한 헤어. 에디가 창조한 제3의 성으로 불리는 ‘소년’ 스타일은 전 세계 남성들의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넓을수록 멋지고 남성적이라 여겨지던 남자의 어깨 선은 날렵하게 좁아졌고, 몸매를 감싸는 모든 라인이 날씬하게 줄어들었다. 이상적인 남성의 몸은 바뀌었다. 남성들은 헬스클럽에서 덤벨을 드는 대신 다이어트에 열중했다. 패션계에서는 ‘슬림’이 미덕이 되었다. 칼 라거펠트가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감행했다는 말은 에디의 인기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남성들은 그의 옷을 입기 위해 살을 뺐고, 여성들은 그의 옷을 입는 남성들을 질투했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단순히 날렵한 수트만은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가장 쿨하고 핫한 유행이 되었다. 그가 베를린에서 시간을 보내자 패션계는 앞다퉈 베를린으로 몰려 갔고, 그가 런던의 언더그라운드 클럽들을 배회하자 모두들 신인 밴드들의 음악을 아이팟에 담기 시작했다. 꼼 데 가르쏭과는 가구를 디자인했고, 사진가의 전시회를 큐레이팅 하는가 하면, 프라이즈 아트 페어에는 조각을 전시했다. 그는 21세기 패션계가 원하던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었다.

하지만 2007년 7월, 디올과의 계약 연장을 거부하면서 그는 패션 디자인을 떠나버렸다. 수많은 루머가 꼬리를 이었다. LVMH가 그의 시그니처 라벨런칭을 돕는 대신 브랜드의 소유권을 요구했다, 디올 옴므를 계속하는 대신 시그니처 라벨의 여성복만 따로 런칭해주기로 했다 등등. 높은 인기만큼 그에 대한 소문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화제의 주인공인 에디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사진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책을 내고, 전시를 열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스티븐 마이젤 등 최고의 사진가들이 속해 있는 아트 앤 커머스에 소속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모두들 그가 2008년엔 패션으로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었기에(심지어 그가 파리에서 디자인팀을 꾸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 뉴스는 당분간 그가 사진에 몰두할 것이란 일종의 사인으로 여겨졌다.

〈보그 코리아〉가 에디 슬리먼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한 건 작년 여름이었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그와 일정을 확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가 확정된 뒤 그가 약속한 건 충분한 비주얼과 긴 답변이었다. 그리고 에디로부터 약속대로 길고 진실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보그 코리아〉를 위해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자신에 대한 루머, 패션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의 답변 속에는 이전까지 숨 쉴 틈 없이 완벽한 앵글 속에 갇혀 있던 에디 슬리먼이 아닌, 평범한 남자로서의 에디 슬리먼이 숨어 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 밑에서 인턴을 했던 한 깡마른 소년에서부터 이제 동시대 가장 선명한 비전을 지닌 사진가까지. 그가 직접 한국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에디 슬리먼,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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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은 지금 가장 세련된 시선을 지니고 있는 사진가로 주목 받고 있다. 안정된 흑백 톤의 사진 속에서 그의 피사체는 어딘가 허물어진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는 이러한 무질서적인 환경 속에서도 희망과 믿음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자신의 책 〈London, Birth of Cult〉를 위해 포착한 케이트 모스와 당시 그녀의 남자 친구였던 피트 도허티. 파리 〈보그〉의 패션 화보 속 사샤. 파리 〈보그〉의 라라 스톤 특집 속 사진. 역시 자신의 홈페이지 속 다이어리 섹션에 올라온 어느소년의 뒷모습.

VOGUE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에디 슬리먼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보면 어떨까?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걸 싫어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사진가? 디자이너?

HEDI SLIMANE(이하 H.S.) 하나의 정의를 따르는 건 언제나 어렵다. 난 무언가를 창조할 때, 항상 다른 매개체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매개체가 내가 하는 일을 정의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매개체가 무엇이라 하더라도, 난 항상 ‘같은 아이디어’를 추구한다. 질문에 답하자면, 최근엔 좀더 사진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디자인도 언제나 저기 코너 옆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VOGUE 일단 사진가로서의 에디 슬리만이 궁금하다. 당신의 사진을 보면 당신만의 독특한 미학이 느껴진다.

H.S. 내 미학은 바로 내가 앞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같은 아이디어’다. 언제나 나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미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공통적으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내 미학은 매우 직관적인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내 작업들을 살펴보는 당신이 나에 대해서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한 작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VOGUE 직관이란 단어가 나왔는데, 그럼 사진 혹은 디자인 모두 직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가?

H.S. 매우 직관적이다. 내 모든 직관력을 사용해서 작업한다. 상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난 나만의 세계, 어떠한 기호들의 연결고리들을 창조하려 한다.

VOGUE 당신 사진 속 대표적인 공통점 중 하나가 사진의 각도나 톤 등은 숨쉴 틈 없을 정도로 정확하지만 그 안의 피사체는 무언가 헝클어져 있고, 무질서적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의도적인 설정인가?

H.S.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것이 내가 정확히 의도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바다. 무질서는 어떤 면에서 매우 감정적인 상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연약함 혹은 ‘프로페셔널리즘’과 ‘프로’가 지닌 어떤 기술성과 반대되는 ‘아마추어리즘’이 좋다. 또, 항상 ‘미지의 것’이라는 유기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탐험하고자 한다.

VOGUE 좀더 쉬운 말로 사진을 통해 당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짧게 표현하자면?

H.S. 믿음 혹은 희망에 대한 것을 찍고 싶다. 부서지고 절망적으로 보이는 것에서조차 희망과 믿음이 있지 않을까?

VOGUE 영향을 받은 사진가가 있나? 예전 디올 옴므의 컬렉션 중 하나는 스타이켄의 사진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았었고, 매플쏘프의 전시회를 큐레이팅한 적도 있었다.

H.S. 사실 매플쏘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그 전시회를 큐레이팅하게 된 건 매플쏘프 재단의 아이디어였다. 덕분에 그의 작품들을 더 잘 알게 되긴 했지만. 좋아하는 사진가를 꼽자면 난 항상 사진 기술 초기의 사진가들이 좋다. 그 이유는 그 작품들은 평론가들이 어떤 다른 포인트를 들먹이며 사진가들의 스타일을 정의 내려버리기 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난 끊임없이 갈구하고, 그들에게 정해진 이미지나 아카이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 좋다. 비록 그 작품이 완성도가 높지 않다 하더라도.

VOGUE 이번 시즌 프라다를 위해 광고 이미지를 찍은 것도 철저히 사진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것인가?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위해 광고를 찍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H.S. 전혀 어렵지 않았다. 광고 사진을 찍을 때면 난 엄격하게 사진가일 뿐이다. 물론 캐스팅은 내가 했다. 난 내가 선택한 사람만 촬영하면 되니까.

VOGUE 당신이 촬영하고 쇼에 세운 모델들은 전부 ‘에디 슬리먼 보이’라고 불린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지만 그 둘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그야말로 제3의 성인 ‘소년’을 창조해냈다.

H.S. 나의 이러한 취향은 80년대 후반 스트리트 캐스팅을 하면서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소년들이 많지 않았었다. 사실 나 역시 그러한 소년 중 한명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난 항상 사물의 안과 겉이 다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남성과 여성의 정의를 무너뜨리려 했는지 모른다. 또, 이러한 소년들을 찾아다니는 건, 천성적인 부끄러움에 대한 일종의 비상구 역할을 했다. 삐쩍 마르고 키만 큰 당시의 내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그 모습을 자신감 있게 받아들이고자 했던 방법이기도 했다.

VOGUE ‘소년’ 에디 슬리먼은 어땠는가? 교실 구석에 앉은 말수 없는 소년이 상상된다.

H.S.거의 비슷하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다. 열한 살 때부터 나만의 세계 안으로 스스로를 소외시켰다. 그런 태도가 내 미학이나 감수성을 변화시키지 않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얼른 자라서 독립적으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VOGUE 그런 조용한 소년이 어떻게 이 정신없는 패션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

H.S.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엄마는 항상 집에서 바느질을 했다. 그리고 가장 먼 기억을 들춰보면 다섯 살 때부터 놀이터에 가는 대신 원단을 사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곤 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오히려 패션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옷을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한 열 여섯 살 때까지는 패션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직접 내가 입을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건 학교 친구들 그 누구와도 비슷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이 되고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처음엔 사회 과학을 공부했고, 후엔 미술사를 공부했다. 흥미롭긴 했지만 그 나이 때는 지겨운 주제였다. 그리고 밤에는 쉴 새 없이 놀러 다녔다. 난 그야말로 ‘하드코어 클럽키드’였다. 그러던 도중 패션 언저리에 일하는 친구들을 몇몇 만났고, 그들은 날 그들의 세계로 이끌었다. 정확히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몇 개의 인턴십 과정을 거쳤다. 여전히 대학을 다니면서 스타일링을 하거나, 디자이너 친구들이나 패션 화보 촬영을 위해 스트리트 캐스팅을 하면서 패션계에 서서히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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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그리고 YSL 옴므, 디올 옴므를 거치면서 이 시대의 소년을 창조해냈다. 그 소년들은 아직도 전 세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 새로운 시대의 남성들을 볼 때면 어떤 기분이 드나? 무섭지는 않나?

H.S. 무섭진 않다. 물론 그들의 스타일이 내 눈에도 보인다. 특히 디올을 떠나자 더욱 더 잘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스타일은 일종의 세대적인 현상인 듯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소년들은 내 작업들을 알지도 못할 것이고, 어디서 그 스타일이 처음 나타났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VOGUE 하지만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H.S. 그런 일도 있다. 하지만 항상 좋은 방식으로 일어나진 않는다. 가끔씩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한 소년들이 생겨나게 된 것에는 내 개인적인 스타일이 널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는 모두 인터넷의 진화 때문이다. 인터넷은 내 정체성을 개발하고, 내 작업과 믿음들을 공유하는 완전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였고, 난 철저히 그 방식들을 실험한 것이다.

VOGUE 끊임없이 당신의 사이트와 마이스페이스를 업데이트하는 것이 놀랍다. 패션계 사람들은 인터넷을 열심히 하는 것이 ‘쿨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H.S. 그런가? 적어도 내게 인터넷은 가장 중요한 표현의 공간이다. 난 정말, 진심으로 인터넷을 좋아한다. 인터넷이야말로 내가 관심 있어 하던 커뮤니티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던 방법이었다. 난 패션업계가 인터넷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패션계는 90년대 태어난 아이들은 이마에 ‘인터넷’이라고 쓰여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

VOGUE 그렇다면 인터넷이 패션과 사진에 미친 영향은 뭐라고 생각하나?

H.S.인터넷은 패션에 엄청난 관객과 패션에 대한 열정과 흥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건 분명 훌륭한 현상이었다. 인터넷은 사진에도 엄청난 접근방식을 제공했다. 디올 옴므에 있을 때도, 디올 옴므의 웹사이트보다 내 홈페이지의 다이어리 섹션이 훨씬 많은 방문객을 불러왔다. 모든 이들이 이미지들을 공유하고 각자의 작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공유한다. 환상적이고 요상한 일이다.

VOGUE 베를린이란 도시도 당신 덕분에 갑자기 레이더망 위로 떠올랐다.

H.S. 베를린은 패션계에선 매력이 없던 곳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누구도 베를린을 선호한다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패션계는 베를린의 매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나 늦은 반응이었다. 패션계는 항상 이상할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다.

VOGUE 베를린에서 3년을 보낸 후에 런던으로 건너갔고, 지금은 LA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

H.S. 난 여전히 런던을 좋아하고 아직도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하지만 내가 거의 모든 시간을 LA에서 보내는 건 맞다. LA는 많은 면에서 동시대적인 곳이다. 지난 10년간 그곳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난 그곳에서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창조적으로도 LA는 아주 세부적이고 불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머지 세상을 앞서나간다. 그런 면에서 내게 LA는 런던과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본다.

VOGUE 하지만 아직도 파리를 집이라고 생각하진 않나?

H.S. 슬프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난 언제나 300%프랑스 사람이라고 느낀다. 지난 10년간 파리에서 완전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아직 파리에 애정이 남아 있지만, 더 이상 그 도시에서 일주일 이상 시간을 보내진 못 한다. 파리는 너무 획일적이고, 굉장히 보수적이며, 느린 곳이다.

VOGUE 도시에 대한 취향만이 패션계가 당신을 뒤따랐던 건 아니다. 모델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촬영하거나 쇼에 세운 모델들은 금방 전성기를 맞이했다.

H.S. 아까도 말했지만, 모델 스카우트는 워낙 오래했기에 이제는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난 항상 사람들을 발견한다. 이건 아마도 내가 언제나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테고, 또 내가 모든 것을 직접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결코 팀을 꾸리거나 어시스턴트를 부려본 적이 없다. 이 모든 일들을 직접 해왔다. 이건 내게 사적인 삶이 중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가 믿는 사람들, 내가 도와주거나 보호하고 싶은 사람들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스스로와의 약속과 마찬가지다. 물론 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지게 된 수백 명의 소년들을 발견했다. 이건 모델뿐만 아니라 음악을 비롯한 다른 분야도 그러했다고 자부한다.

VOGUE 그렇기에 당신이 듣는 음악, 입고 있는 옷, 어울리는 모델들이나 사람들은 언제나 쿨한 것의 기준이 되었다. 쿨하고 쿨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분해내는지 궁금하다.

H.S. 어떤 것이든 간에 쿨하게 보이려고 계획된 것들은 반드시 비극적일 정도로 쿨하지 못하게 보이고 만다. 쿨한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 솔직한 것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후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VOGUE 이제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이 패션계를 떠난 후, 남성 패션계가 어떻다고 생각되나?

H.S.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하지 않는 한 지금의 남성복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 항상 무언가 고칠 점을 발견하고 만다.

VOGUE 그럼 다른 디자이너의 옷을 전혀 사 입지도 않나?

H.S. 나는 항상 빈티지만 사서 새로 만들어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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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당신이 디올 옴므를 떠날 때 많은 루머가 떠돌았다. 그 말고도 수많은 루머가 재생산되었다. 그 중 바로잡고 싶은 것도 있나?

H.S. 거의 모든 루머들을 바로잡고 싶다. 내가 어떻게 디올을 떠나게 됐는지부터. 디올을 떠난 건 내게 있어서 완전하게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디올 하우스는 나를 계속 잡아두고 싶어 했지만, 난 더 이상 몇 년이고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서 할 것은 이미 다 해버린 상태였다. 내 머릿속에서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하우스는 그저 내 디자인을 카피해서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 그들이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물론 내 결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결정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했다. 난 결코 누구에게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

VOGUE 하지만 패션이 그립지 않나? 2008년에 돌아오겠다 했지만, 2009년이 되었다.

H.S.그렇다. 하지만 갑자기 경제 위기가 나타났고, 난 누구와 일할지에 대해 좀더 현명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다. 함께 일을 하게 될 패션 회사들이 얼마나 튼튼한지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계약서에 몸을 메이기 싫었다. 지금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그리고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할 때 하고 있다. 알맞은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패션에 돌아갈 것이다. 물론 완벽하게 공을 들여서. 어느 것에나 타이밍이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 채 기다리며 지켜볼 때다. 이제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로 흥미로운 순간이다.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VOGUE 그럼 이 경제 위기가 패션에 대한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 생각하나?

H.S. 완벽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우선 많은 브랜드들이 사라질 것이고, 글로벌 브랜드라는 구조는 좀더 감성적이고 진실된 것으로 진화할 것이다. 패션하우스들은 팔 수 있는 거라면 모든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 속에 쓰레기 같은 것들도 있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이름을 더럽힌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VOGUE 패션을 떠나서 새롭게 배운 건 있나? 운전을 하지 못했었는데.

H.S. 이제 운전은 할 줄 안다. 하지만 아직 면허증은 없다. 정말 바보 같은 일아닌가? 게다가 차는 있다. 그래서 친구들이 차를 몰고 나를 태우고 다닌다.

VOGUE 친구들과 문자도 자주 하나? 가장 자주 쓰는 약어라도 있나?

H.S. 거의 하루 종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내가 어떤 말을 자주 쓰는지는 모르겠다. 잠시만, 살펴보겠다. 음, 거의 몇 단어 없다. 특별한 것도 없다.

VOGUE 당신의 스타일과 이름만큼 유명해진 건 당신의 헤어 스타일이다. 지금 머리 스타일을 설명하자면?

H.S. 정말 그랬다! 지금은 위가 완전히 평평해졌다. 이 스타일은 80년대 후반 에 이미 해봤던 스타일이긴 하다.

VOGUE 그렇다면 요즘 에디 슬리먼에게 있어 완벽한 하루는 어떤 건가?

H.S.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는 것!

VOGUE 마지막으로 되묻겠다. 에디 슬리먼은 누군가?

H.S.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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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스트리트 캐스팅을 거듭해온 에디 슬리먼은 자신이 원하는 인물만 촬영한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영국의 〈데이즈드&컨퓨즈드〉의 커버를 장식한 밴드, 클래시의 폴 시모넌의 아들 루이스 시모넌. 슬리먼은 이번 시즌 프라다 남성복 캠페인을 위해 시모넌과 클로드 형제를 촬영했다. 파리〈보그〉의 테일러링을 주제로 한 패션 화보 속 안나 셀레즈네바. 〈보그 옴므 재팬〉의 런칭 이슈 속 일본을 모티브로 한 화보 모델 애쉬의 얼굴. 슬리먼이 포착한 영국 십대 소녀의 모습. 사무라이를 표현한 애쉬. 파리 〈보그〉의 화보를 위해 LA에서 촬영한 하이디 마운트. 닉 케이브의 아들, 제스로 케이브.

PROUST QUESTIONNAIRE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특징 일관성.

남성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자질 충성심과 용기.

여성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자질 충성심과 용기.

성격적 특징 재빠른 것.

친구들에게서 가장 고맙게 여기는 것 정직함과 따뜻함.

최대 결점 거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

좋아하는 일 아마 사진 찍는 것?

행복이란? 파란 하늘과 주위의 친구들.

슬픔이란? 혼자 있는 것.

자신이 아니라면 되고 싶은 인물 정말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아마 뮤지션?

살고 싶은 곳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산다. 거기가 어디든 내 수트 케이스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색과 꽃 블랙, 향기가 있는 꽃.

가장 좋아하는 시인 버로우, 쥬네.

가장 좋아하는 화가와 작곡가 재스퍼 존스.

실제 삶 속 영웅 거리에서 만나게 될 누군가. 겸손한 영웅들.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수 트뤼플 오믈렛과 오직 물.

가장 싫어하는 것 질투심, 추측.

가졌으면 하는 재능 완벽하게 드럼을 칠 수 있는 것.

현재의 정신적 상태 황홀경에 빠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모토 DIY(Do It Yourself).

출처_Vogue 2009. 3월호

http://www.vogue.co.kr/content/view_01.asp?menu_id=02030200&c_idx=01100514000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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