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日 대표 건축가 구마 겐고_이젠 콘크리트 아닌 ‘나무 건축’이다

나무의 건축 생물의 유한성 가르쳐 줘 나도 이렇게 죽겠구나 느긋하게 느낄 수 있어
나무·흙·기와 많이 사용 유년시절 살던 구식 가옥 주변 자연 이용하는 내 건축 스타일에 영향
직원 뽑는 기준은 12시간 설계 과제 주면 중간에 사라지는 지원자도
건축가의 소양은 끈질기게, 끝까지 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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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 겐고 건축가
지난달 23일 저녁 서울 중구 페럼타워 강당에서 위클리비즈 애독자 모임인 위비클럽과 조선비즈 북클럽이 함께 여는 지식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연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硏吾·60). 자서전 ‘나, 건축가 구마 겐고’ 한국 출간을 기념한 자리였다.

구마는 안도 다다오와 이토 도요를 잇는 4세대 일본 건축계 대표 주자다. 콘크리트로 대변되는 획일화된 현대 모더니즘 건축에 맞서 ‘약한 건축’ ‘지는 건축’을 구현하고 있다. 자서전에서도 “이전 세대 일본의 대단한 건축가가 만든 대단한 건축만은 만들고 싶지 않다. 일본이 강했던 시절의 강한 건축은 따르고 싶지 않다. 약한 일본이니까 약한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고 썼다. 도쿄대 대학원 건축과를 수료하고, 2009년부터 도쿄대 건축과 교수로 있으며 “감수성이 통한다”고 느끼는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을 즐겨 듣는다고 한다.

이날 강연회장에는 건축과 대학생, 주부, 출판업자 등 200여 명이 몰렸고, 자서전을 감수한 임태희 디자인스튜디오 대표가 통역을 맡았다. 구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미소에 헐렁거리는 검은 재킷과 바지를 입고 연단에 올라 서투른 한국말로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많은 분이 와줘서 감사하다”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1시간 30분에 걸쳐 강연하면서 발표 화면에는 글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200장 가까운 건축물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가면서 이야기했는데, 다음 사진이 뭘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강연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아까 내 소개를 하면서 안도 다다오씨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1953년생이고 안도는 1941년생이다.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안도는 일본 건축계 3세대, 나는 다른 세대(4세대)다. 안도는 성장의 시대를 살았고, 나는 성숙의 세대를 살고 있다.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인구도 줄어들고 있다. 비로소 어른이 되는 세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도 곧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건축학적으로 보면 안도는 건축 재료를 많이 썼고, 주 재료는 철과 콘크리트였다. 반면 우리 세대는 건축 건수도 감소했을 뿐 아니라 건축이 어떻게 하면 인간을 치료하고 편안하게 해줄까 고민한다. 커다란 변화다.

내 작품은 나무 같은 자연 소재를 많이 쓴다. 유년 시절과 연관이 있다. 할아버지가 도쿄를 싫어해 요코하마로 이사를 와 조그마한 지붕에 흙과 돌로 만든 구식(舊式) 가옥을 짓고 살았다. 친구들은 번듯한 양옥에 사는데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주변 자연을 이용한 내 건축 스타일의 원형이 그 옛집에 다 있었다.

어릴 때 살던 집과 지금 내 건축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하면, 첫째, 단위가 작다는 점이다. 나는 작은 단위로부터 시작하고, 그것들을 붙여 크게 만든다.

둘째, 주로 나무·흙·기와를 많이 쓴다. 1930년대 지어진 집은 그랬다. 벽은 흙으로 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흙이 집 안으로 떨어지는 일도 생긴다. 어렸을 땐 짓는 순간부터 낡아 보이는 재료가 맘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 집은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으로 꾸며 멋있었는데, 우리 집은 촌스럽다고 느껴 친구들을 못 오게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부터 생각이 바뀌어 자연 소재를 쓰는 우리 집이 굉장히 멋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셋째 연관성은 지붕이다. 당시 아파트가 유행하면서 친구들 집엔 지붕이 없었다. 우리 집만 있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붕이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최근 짓는 많은 건축물의 특징도 이 지붕이다. 지금 말한 세 가지 연관성이 내 프로젝트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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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부터 좌우)①NHN 춘천 연수원(조감도). 조그만 건물을 분할시켜 넣었다. ②중국 베이징 대나무집. 대나무를 통해 중국을 자유롭게 해석했다. ③후쿠오카 스타벅스 매장과 ④도쿄 서니힐 케이크점은 나무로 짜맞춘 구조체가 인테리어를 이룬다. ⑤마닐라 박물관(조감도). 나무나 자연으로 만들었다. ⑥제주 롯데아트빌라스. 제주 화산봉 느낌을 재현했다. ⑦규슈 게이분칸 미술관. 내부공간은 대부분 나무를 사용했다./사진=구마 겐고 사무소 제공
중국 예술학교

작은 집들이 모여 군(群)을 형성한다. 전부 다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지붕이 걸려 있다. 벽면은 중국 기와를 썼다. 중국 기와는 옛날 우리 집에서 우산꽂이로 썼던 재료이기도 해서 친숙하다.

NHN 춘천 연수원

앞서 소개한 중국 예술학교처럼 경사면이 있고, 하나의 건물을 크게 넣기보다 작은 건물들을 분할시켜 넣었다.

제주 롯데 아트빌라스

‘제주 볼(Jeju Ball)’로 불린다. 제주 하면 가장 인상 깊은 게 화산인데, 그것을 구성하는 현무암을 쌓아 곡선형 지붕을 만들었다. (또 작은 구멍들과 짙은 검은색이 특징인 현무암의 느낌을 반영했다고 한다.) 고급 빌라이지만 겉은 굉장히 소박해 보인다. 안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르다.

후쿠오카 스타벅스 매장

다자이후 신사(神社) 앞이라 매장 점주가 프랜차이즈 매장 짓듯 하면 곤란하고 구마 겐고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 본사를 설득해 성사시켰다. 원래 스타벅스는 본사에서 직접 점포 디자인을 하지 외부에 맡기는 법이 없다고 한다.

나무가 단순히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라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체이다. 6m 길이 나무 조각 4개를 짜맞추고 철봉을 넣어 구조 지지대로 사용했다. 2000개가 넘는 나무 조각이 직물처럼 얽혀 있다. 애초 본사에서 “자체 설계보다 공사비가 많이 나온다. 이걸 맞추려면 커피를 몇만 잔 더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는데, 나중에 명소가 되자 미국 시애틀(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도시)로 강연 초청까지 받았다.

도쿄 서니힐 케이크 점

파인애플 케이크를 파는 대만 가게인데 도쿄에 점포를 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부탁했다. 그때 스타벅스 생각이 났다. 다자이후 스타벅스 점포를 거꾸로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무가 장식이 아니라 자체가 구조체다. 3층 건물인데 나무로 된 십자형 연결체가 다 지탱하고 있다. 시공업체들이 난색을 보여 공사가 오래 걸렸다.

마닐라 박물관

가장 최신작이다. 자연의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프랑스 다리우스 밀로 예술학교

여기서 강조한 건 그림자였다. 엑상프로방스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는 화가 폴 세잔이고, 세잔은 자연의 그림자, 음영을 작품에 반영했다. 그래서 건축으로 그림자를 만들고 싶었다. 알루미늄 패널로 건축했고, 그것이 만드는 그림자를 보여줬다. 건물을 디자인한 게 아니라 그림자를 디자인했다.

규슈 게이분칸 미술관

규모가 크지만, 작게 분절했다. 개별적인 지붕이 있고 그것이 하나의 건물이 되는 형태로 만들었다. 전체는 크지만 작은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내부 공간은 대부분 나무를 사용했다. 중정(中庭)이 있다.

광주 비엔날레 ‘낭창낭창’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바닥면을 걸어가면 구부러져 있는 대나무 조각이 흔들린다. 울리고 떨린다. 콘크리트로 만드는 건축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아주 작은 마이크를 바닥에 심어서 걸을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게 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을 보면 이해가 가겠지만, 나는 20세기 콘크리트 건축을 떠나 미래의 건축을 만들어가는 게 목표다. 부연설명 하자면 예전부터 사용한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책에 “나무의 건축은 생물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변색하고 썩어가는 나무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죽겠구나’라고 느긋하게 느낄 수 있다. 반면 콘크리트와 철로 만들어진 번쩍이는 건축물을 보고 있으면 생물이 죽는다는 것,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잊고 만다. 죽음을 잊는다는 건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썼다.)

―작은 지붕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물체이고 동물이다. 생물이니까 자기보다 더 큰 덩치에 위화감을 느끼거나 압도당한다. 커다란 규모가 요구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분할이란 기법을 사용, 인간이 편안하고 안락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게 건축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기하학적인 형태로 증식하고 번성하는 형태를 띠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기하학 자체에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나무라는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나무 자체가 구조체가 되려면 기하학적 구조체가 돼야 해서 연구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그 기하학이 따뜻하고 인간에게 친밀한 기하학이 될 수 있는가 고민한다.”

―건축주가 초고층을 요구한다면 철물 구조를 생각해야 할 텐데, 그러면 어떤 디자인을 대안으로 생각할지 궁금하다.

“내 작품도 사실 나무가 구조체인 것만 있진 않다. 콘크리트가 구조체인 것도 많다. 그럴 경우 내 가치관은 콘크리트로 어떻게 하면 표현을 잘할까가 아니다. 콘크리트가 주인공이 아니라, 인간이 그 공간에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가 중요하다.”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산책하면서? 아님 책상에 앉아?

“설계나 디자인 회의를 할 때 반드시 모형을 올려놓고 한다. 모형 없이 이야기하면 추상에서 추상으로 끝난다. 모형을 올려놓고 바라보는 순간 추상적인 이야기는 사라지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된다. 우리 사무실 발상의 전환 비결은 모형이다.”

―인간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사랑하는 건축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프랑스의 건축가로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린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20세기는 콘크리트를 요구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초기보다는 후기 작품을 좋아한다. 같은 재료를 썼어도 느낌이 다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직원을 뽑을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건축가로 가져야 할 소양은 뭔가.

“‘당일 설계’ 면접을 한다. 아침 10시에 주제와 과제를 준다. 그리고 밤 10시까지 설계를 하게 한다. 그 설계를 보며 면접을 해서 채용한다. 가끔 설계하다가 사라지는 지원자도 있다. 건축가의 소양을 꼽으라면 끈질기게 하는 것, 끝까지 하는 것이다. 끝까지 하는 것만큼 건축가로서 중요한 건 없다.”

10년 넘게 구마와 교류하는 임태희 대표는 “가방 없이 다니는 구마의 주머니에는 언제나 문고판 크기 작은 책이 꽂혀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정 속에서도 그는 1년에 50권 이상 책을 읽는다”고 전했다.

출처 조선일보 2014. 5. 7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06/20140606013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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