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이 라벨 하나 달기 위해 양털 농장 키우는 명품 회사_105년 명품 정장 ‘제냐’… 골리앗 업체 속에서 건재한 ‘자기만의 싸움 방식’

105년 명품 정장 ‘제냐’… 골리앗 업체 속에서 건재한 ‘자기만의 싸움 방식’

남이 디자인 주력할 때 원단 품질에 집중
양 목장·재단·유통… 옷 만드는 全 과정 개입

패스트 패션 장점 흡수
신제품 기획 후 4주만에 정장 만들어 매장에 전시

“고객과의 연결고리가 성공의 핵심 요소”
세계 546개 매장 직영

세상의 모든 아이디어와 경쟁
“사람들이 패스트 패션 원한다면 명품도 그들의 방식 따라 혁신해야…
자동차·예술 작품도 우리 경쟁자”

매 순간 고객과 맞닿아 있다
중국 고객 직접 관리하며 스킨십
아시아 진출 명품 업체 중 최고 실적

다윗은 어떻게 골리앗을 이겼을까. 답은 간단하다. 골리앗처럼 힘으로 싸우지 않고, 자신만의 싸움 방식인 돌팔매질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명품 시장에도 다윗이 있다. 고급 남성 정장으로 유명한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이하 제냐)도 그중 하나다. 매출이 12억7000만유로(약 1조8000억원) 정도로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와 리슈몽(Richemont) 같은 골리앗의 20분의 1, 10분의 1밖에 안 되지만, 3대를 이어가며 105년을 살아남았다. 그것도 뚜렷한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위클리비즈는 그 비결을 알기 위해 제냐 본사가 있는 스위스의 소도시 스타비오에서 질도 제냐(60) 회장(CEO)을 만났다. 제냐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타비오에 두 개의 본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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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베이지색 정장에 하늘색 셔츠를 받쳐 입고, 양말을 신지 않은 채로 갈색 로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종합해 본 결과, 제냐가 100년 기업이 된 비결은, 경쟁자의 싸움 구도에 말려들지 않고 스스로 싸움의 룰을 만들고 선도한 데 있음을 알게 됐다.

이를테면 다른 명품 업체들이 디자인에 집중하는 동안, 제냐는 원단에 집중했다. 굵기가 사람 머리카락 5분의 1밖에 안 되는 원사를 만드는가 하면,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주름이 잡히지 않는 양모, 방수와 방풍 기능이 들어간 양모를 만들어 냈다. 또 넥타이나 스카프에만 쓰이던 비단의 내구성을 높여 재킷이나 코트에도 쓸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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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가보면 양 목장이 많이 있어요. 저희는 이들을 직접 지원하는 유일한 의류 업체입니다. 또 방직공장을 세워 원단을 자체 생산합니다. (많은 의류업체가 원단을 아웃소싱한다.) 이건 품질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공정을 직접 살펴보면서 혁신할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오직 제냐에서만 만들 수 있는 원단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베인앤컴퍼니 코리아의 송지혜 파트너는 “원단을 제작하는 데 브랜드 정체성을 담는 명품 브랜드는 제냐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원단에 대한 집중은 이 회사의 태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냐는 창업 후 첫 50년은 원단 제조업체였고, 1960년대에야 남성복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냐만의 싸움 방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스피드도 그중 하나다. 제냐는 신제품을 기획해 매장에 전시하기까지 4주 정도가 걸리는데, 이는 흔히 ‘패스트 패션’으로 불리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브랜드) 회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느리지 않다. 명품이지만 마치 자라나 H&M, 포에버21처럼 싸우는 셈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제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직접 개입합니다. 양털 목장을 짓고, 양털을 뽑고, 원단을 짜고, 이것을 재단해서 정장을 만듭니다. 마치 수평선처럼 끝도 없이 늘어서 있죠. 그 어떤 회사도 저희와 같은 모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힘들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4주라는 이른 시간에 물건을 대기 어려웠을 겁니다.”

제냐의 원점인 원단이 가치사슬(value chain·기업이 부가 가치를 생산하는 전 과정)의 시작 단계에 해당한다면, 제냐는 최근엔 가치사슬의 끝단인 매장 운영에 더 주력하고 있다. 제냐는 세계 546개 매장을 모두 직영한다. “고객과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1991년 명품 업체 중 최초로 중국에 진출했는데, 거기서도 저희가 물류, 배송, 매장 서비스 모두를 직접 통제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현지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유통 채널에 매장 운영을 맡겼던 것과는 달랐죠. 저희가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고객과 직접 만나 제품을 팔았다는 데 있습니다.”

제조부터 유통까지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도 제냐의 비즈니스 모델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와 유사하다. 실제로 제냐 회장은 “패스트 패션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업계가 급성장한다는 것은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패스트 패션의 최대 경쟁력은 속도입니다. 제작, 유통, 판매, 혁신까지 모조리 빠릅니다. 명품 브랜드가 그만큼 빠르게 운영될 수 있다면 엄청난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원단부터 매장 운영까지 혁신의 역사 쓰는 ‘제냐’

제냐의 스타비오 본사는 마치 귀족의 별장처럼 꾸며진 3층 저택이었다. 18세기 건축 양식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철제 대문을 들어서자 아담한 정원이 펼쳐져 있고 작은 분수도 있었다.

질도 제냐 회장의 할아버지이자 제냐의 창업자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1910년 아버지가 경영하던 원단 공장을 물려받아 새 모직 공장을 열었다. 제냐의 탄생이다. 기존의 낡은 프랑스식 직조기를 새로운 영국식 기계로 바꾸는 한편, 원자재를 산지에서 직수입하기 시작했다. 1930년부터 자기 이름을 원단 가장자리에 새겨 팔아 이름 자체가 품질 보증서 역할을 했다.

좋은 소재에 색채감이 뛰어난 이탈리아 특유의 감각이 더해져 제냐 원단의 명성이 높아져 갔다. 제냐는 한 번 더 회사를 혁신의 길로 이끌었다. 1960년대부터 남성복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창업자의 아들인 알도와 안젤로가 회사 경영을 맡으면서 최고급 소비자층을 겨냥한 남성 기성복 시장에 진출했다.

질도 제냐 회장은 제냐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로 짚어 줬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원단을 혁신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서비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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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 있는 제냐의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와 외관. / 제냐 제공

혁신의 원천은 ‘고객과 가까이’

“원래 원단 업체였던 제냐는 오랫동안 품질 좋은 원단을 공급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매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고객들과 만나기 좋은 자리에 매장이 있는지, 제품이 손님들에게 좋게 잘 보이는지,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불편함은 없는지, 고객이 매장에서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저희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고, 오히려 원단보다도 더 집중했습니다. 덕분에 고객과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회사가 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고 일대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게 고객과 연결된 감이 회사를 상승 곡선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베인앤컴퍼니 코리아의 송지혜 파트너는 “제냐는 설립 이후 가치 사슬의 최초 단계인 원단을 혁신하는 데 주력해 왔지만, 최근 10년간은 가치 사슬의 최후 단계인 소매 혁신을 진행 중”이라며 “가치 사슬의 제일 앞 혁신으로 살아온 기업이 최후 단계 혁신으로 거듭나는 것은 명품 업계에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질도 제냐 회장은 1970년대에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고객 서비스의 중요성을 배웠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도 물건을 파는 직원이 성실하게 고객 응대를 하지 않는다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다.

제냐는 한 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아시아 시장에서 거둔다. 1990년대 제냐를 비롯해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등 많은 명품 브랜드가 잇따라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지만, 제냐만큼 성공을 거둔 브랜드는 없었다. 제냐가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철저한 고객 경험 관리 덕분이었다. 당시 명품 브랜드 상당수는 아시아 현지의 백화점이나 토털 패션 브랜드에 매장을 맡겨 운영했는데, 이들이 서비스보다는 눈앞의 매출에 집중하는 바람에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된 것이다.

제냐는 확장하는 속도는 조금 늦더라도 확실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매장에 제품을 전시하는 순서나 방법, 상황에 따라 고객을 응대하는 자세 등을 세세하게 명시한 지침을 공급하고, 직원들에게 제냐의 역사와 브랜드 정체성에 대해 철저히 교육했다.

“가치 사슬의 어느 부분에 있든 혁신 과정은 비슷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죠. 그것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 순간 고객과 맞닿아 있는 겁니다. 제작부터 판매, 사후 고객 관리에 이르기까지요. 핵심은 ‘고객과 가까이(close to the customer)’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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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냐 코트

적(敵)에게서도 배운다

성공 비결 셋째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제냐 회장은 말했다. “패션 트렌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달라집니다. 남성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비즈니스 미팅에서 반드시 정장, 그것도 어깨 부분에 각이 딱 선 ‘파워 슈트’가 필수적이었어요. 그런데 10년쯤 전부터는 어깨 부분 보강물이 빠져도 상관없어졌어요. 또 비즈니스 캐주얼이 등장했고, 요즘은 화려한 부토니에나 행커치프를 매치하기도 합니다. 남성복이라고 해도 과거의 전통에 매몰돼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남성복만 만들던 저희가 1999년 여성복 브랜드 ‘아뇨나(Agnona)’를 출범시킨 것도 그런 시도의 일환입니다.”

기자는 지난해 미국 정장 브랜드 브룩스 브러더스의 클라우디오 델 베키오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패스트 패션에 대해 “한두 번 입으면 옷 모양이 뒤틀리고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되는 낮은 품질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한 제냐 회장의 의견을 묻자 그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니,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저희 같은 업계에 있을수록 패스트 패션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패스트 패션은 ‘모두의 옷’이 돼 가고 있습니다. 사실 명품과 패스트 패션을 저가와 고가 시장으로 나누는 것도 점점 의미가 사라지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고객 상당수는 명품 정장 안에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그건 고객들이 돈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게 스타일링을 하는 거죠. 이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약 패스트 패션을 우리와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명품이 있다면, 나중에는 시장에 잡아먹히게 될 겁니다.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찾고 우리 사업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해야만 패스트 패션의 진격에 대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특히 패스트 패션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유통 채널”에서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패스트 패션의 스피드를 벤치마킹해 원래 연간 두 시즌(봄·여름과 가을·겨울)으로 나눠 신제품을 출시하던 것을, 네 시즌(봄, 여름, 가을, 겨울)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별도로 고객의 옷장을 컨설팅하는 서비스, 즉 패션 어드바이서 사업 진출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냐는 이처럼 ‘명품 업계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에 갇히지 않고 경쟁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업 모델을 혁신해 왔다. 그런 차원에서 ‘카테고리를 허무는(decategorize)’ 기업으로 볼 수 있다.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소유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

제냐의 핵심 경쟁력은 앞서 언급했듯 원단에 있다. 제냐는 그 원단을 경쟁 명품 업체들에도 공급한다. 베르사체, 에르메스, 아르마니, 페라가모, 그리고 한국의 제일모직과 고급 양복점들이 제냐의 원단을 쓰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원단을 다른 데 공급하지 않고 제냐가 독점해서 정장을 만들면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독점해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제작하는 원단 중 절반으로는 직접 정장을 만들고 있고, 나머지는 다른 브랜드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전체 시장 상황이 나빠진다고 해도 안정적인 수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최종 소비자에게 여러 채널로 제냐라는 브랜드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독점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이득이죠. 저희가 직접 정장을 제작하는 ‘리테일’ 비즈니스와 원단을 공급하는 ‘B2B’ 비즈니스는 그 구조나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희는 두 가지 채널을 유지함으로써 비즈니스적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냐의 경쟁자는 누구인가요?

“제냐는 새로운 아이디어 모두와 경쟁합니다. 고객이 앞으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요. 예컨대,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측면에서는 크루즈와 같은 여행 상품이 경쟁 상대가 될 것이고, 명품이라는 측면에선 고급 자동차 브랜드와도 경쟁할 것이고, 취향의 측면에선 그림과 같은 예술 작품과도 경쟁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경쟁자는 명품 남성복 브랜드에 국한했지만, 지금은 경쟁자를 보는 관점이 극단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어떤 업계든 업계 간 벽이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고객들은 어제 옷을 샀다면, 오늘은 항공권을 예매하고, 내일은 자동차를 삽니다. 그래서 어떤 업계든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 마주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고객의 시간’을 얼마나 소유하느냐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를 겁니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놓고 싸우는 셈이죠.”

명품 성공 공식 흡수한 패스트 패션 ‘조 프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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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프레시의 뉴욕 5번가 매장. / 조 프레시 제공

명품 시장에서 제냐가 패스트 패션 방식을 받아들여 게임의 룰을 재정의했다면, 반대로 패스트 패션 시장에서 명품의 성공 공식을 모방한 브랜드가 있다. 캐나다의 조 프레시(Joe Fresh)가 그것이다. 조 프레시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유명 디자이너가 상주하며 제품을 디자인한다. 이 회사의 사장 겸 수석 디자이너 ‘조 밈란(Mimran·63)’은 ‘클럽 모나코’ 브랜드를 론칭한 세계적 디자이너다. 조 프레시는 명품 브랜드처럼 1년에 두 차례씩 패션쇼도 연다.

2006년에 출범한 이 브랜드의 유통 전략도 패스트 패션의 성공 공식을 거스른다. 이 회사는 대형 단독 매장 대신 식료품 체인점 안에 둥지를 틀고 옷을 판다. 이 회사의 모기업인 로블로(Loblaw)의 매장에서 과일이나 야채와 함께 옷을 파는 것이다. 토론토에서 만난 조 밈란 사장은 “먹거리가 주요 상품인 대형 유통업체 안에 패션 매장을 개점한다는 것은 내겐 신기원이었다”고 말했다.

조 프레시는 아직 국내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북미 지역에선 잘 알려져 있다. 출범 10년도 안 돼 북미에서만 매장 1000여 개를 확보했고 캐나다에서만 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했다. 조 밈란 사장 겸 수석 디자이너는 밤색 스웨터에 흰색 바지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은발 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넘겼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는 1985년 클럽 모나코를 시작했고, 1999년에 5300만달러에 랄프로렌에 매각했다. 그리고 캐나다의 최대 식료품 체인점 로블로(Loblaw)에 영입돼 조 프레시를 론칭했다.

음식을 고르듯 제품에 집중하라

조 프레시를 상징하는 색은 오렌지색이다. 밈란 사장은 “신선한 오렌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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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밈란 사장 겸 수석 디자이너

“조 프레시의 첫 매장 옆에는 진짜 신선하고, 상큼하고 즙이 많은 오렌지가 잔뜩 쌓여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옷도 음식처럼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신선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 장소는 식품 매장이잖아요? 매장에 막 들어갔는데 까맣기만 하다면 식욕이 뚝 떨어질 겁니다. 신선하고 상큼하고, 보고 있자면 식욕이 돌 만한 색깔로 정하자, 그래서 오렌지로 색깔을 정한 거예요.”

‘조 프레시’라는 이름은 먹거리처럼 신선(fresh)하다는 의미를 조 밈란의 이름에 결합해서 붙였다고 한다.

밈란 사장은 패스트 패션을 ‘세상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요소(equalizer)’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이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패션에 탐닉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품질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소비자들이 가격 때문에 품질을 희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수많은 공장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세상엔 생산 공장이 수십, 수백만 개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공장이 제품 공정에 얼마나 헌신하는지를 눈여겨봤습니다. 그리고 제품의 질을 따질 때는 ‘무(無)관용 정책’을 원칙으로 합니다.”

진정성이 스피드를 이긴다

―패스트 패션은 경쟁이 몹시 치열한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 프레시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라와 유니클로, H&M은 각기 그들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경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제안을 할 수 있는가’를 중시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패션 업계야말로 기회가 무궁무진한 곳입니다. 업계 자체가 매우 크고, 사람들의 지출 역시 아주 큽니다. ‘대형 업체와 경쟁해 나가떨어졌다’는 말은 패션 업계에선 먹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매우 세분된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 세분화만 잘 포착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패션 업계에서 실패는 누군가와 벌인 경쟁에 뒤떨어져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 프레시는 소비자에게 어떤 제안을 하고, 어떤 세분된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까?

“많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속도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저는 경쟁 브랜드가 하는 방법대로 지금 패션쇼 무대에서 일어나는 트렌드를 뽑아다 매장에 들여놓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트렌드의 노예가 아닙니다. 조 프레시의 디자인은 한 시즌이 끝나고 난 뒤엔 더는 유행에 뒤떨어져서 입지 못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저는 제품의 진정성이 스피드를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2015. 1. 10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09/20150109018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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