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르 라보’의 독재자, 에두아르 로시와의 만남

최고의 니시 향수로 칭송 받는 ‘르 라보’의 독재자, 에두아르 로시를 파리에서 만났다. 대량 생산되는 기존 향수 체제에 혁명을 일으킨 그와 나눈 흥미로운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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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로시는 화장품업계에서 흔히 만나는, 밝고 의욕적이고 수다스러운 타입은 아니었다. 특히 향수업계 사람들은 1960년대 포크송 가사처럼 의미가 불분명해도 무척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향기 스토리를 청산유수로 읊조리는데, 요즘 최고로 핫한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를 만든 그는 “재미있는 얘기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치열하게 만들 뿐이죠”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그를 만난 후 르 라보가 더 멋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뽀글머리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일품인 그를 파리에서 만났다.

당신과 파브리스 피노(르 라보의 공동 창립자)는 조향사가 아니죠?
맞아요. 전 향수의 컨셉을 잡고 조향사를 선정해 최종 향까지 결정하는 아티스틱 디렉터예요(파브리스 피노는 비즈니스를 담당한다).

그래서 실험실을 매장에 들여놓은 거예요? 이런 향수 매장은 처음 봐요(‘르 라보’는 실험실이란 뜻이다).
눈 앞에서 향수를 블렌딩하는 것 말이죠? 에센셜 오일 콘센트레이트에 알코올과 물을 섞는 거예요.

바로 만들면 더 신선한 향이 나나요?
아니요. 똑같아요. 시트러스처럼 라이트한 향은 금방 만든 게 조금 더 신선하지만, 차이는 미미하죠.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 있는 르 라보 매장의 향수들도 뉴욕이나 런던 매장에서 똑같이 만들어서 비행기로 실어 보내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굳이 향수 제조 과정을 보여주냐고요? 전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접 보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향을 맡아보라는 거죠. 향수이름을 보세요. 메인이 되는 원료가 이름이고, 그 뒤에 붙는 숫자는 성분의 개수예요. 라벨에도 고객이 원하는 이름을 넣어 바로 붙여주죠(그 순간에도 점원이 금방 블렌딩을 마친 ‘자스민 17’에 ‘18세가 된 딸 리카에게’란 문구를 넣은 라벨을 붙이고 있었다. 실험실 너머로 딸과 엄마가 바라보는 가운데 말이다). 카운터 뒤로 수많은 갈색 병이 보이죠? 모두 원료들이에요. 좋아하는 향수를 고르면 그 원재료의 향 또한 맡아보게 하죠. 레스토랑에 갔는데 음식이 참 맛있어서, ‘이거 왜 이렇게 맛있죠?’라고 물었을 때 셰프가 재료나 향신료들을 보여주고 맛보거나 만져보면 즐겁잖아요. 탐구와 발견이죠.

어려서부터 향수를 좋아했나요?
첫 향수는 기 라로쉬(Guy Laroche)의 ‘드라카 누와’였어요. 그렇지만 향수에 열광적인 소년이었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요. 화학을 공부했는데,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고 싶진 않았고, 결국 퍼미스트가 되면서 향수와 더 친해졌죠.

컨셉의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스토리가 될 때도 있고 원료에서도 영향을 받아요. ‘네롤리 36’은 여름 휴가철 해변을 걷던 기억에서 출발했죠. ‘로즈 31’은 ‘치마를 입은 남자’가 컨셉이었어요. 스코틀랜드, 버마 등에선 남자도 치마를 입는데 왜 우린 모두 청바지만 입고 다닐까 생각했죠. 그래서 최고로 여성스러운 원료, 장미 향을 남자가 뿌린다면 모두가 ‘스커트 입은 남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향수를 만들었죠.

스커트 입어본 적 있어요?
스커트를 입는 대신 ‘로즈 31’을 뿌리죠. 쉽고 남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니까요.

향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나요?
네. 거창한 건 아니고 주로 원료를 알기 위해 가죠.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수확되는지 보기 위해서요. 인도네시아의 파촐리, 마다가스카르의 바닐라, 브라질, 아마존 등. 그 중 한 곳만 추천하라면 프랑스 그라스요. 특히 4~5월 세상에서 최고의 장미라는 ‘로즈 샹티플리아’를 수확하는 모습이란! 1kg의 에센셜을 얻으려고 몇 톤의 장미 꽃잎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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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뭔가요?
‘우드 27’. 대중적인 향은 아니에요. 전 동물적인 향을 선호하거든요. 르 라보의 베스트셀러는 ‘로즈 31 ’ ‘샹탈 33’이죠.

향초와 향수는 전혀 별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네요.
맞아요. 보디 로션, 마사지 오일 등은 향수와 연장선상에 있지만, 향초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공간에 녹아드는 향이라 ‘분위기(Atmosphere)’를 중시했죠. 장작 타는 냄새, 바다 냄새, 무화과 냄새 등등.

당신은 향수를 사랑하나요?
물론이죠. 그렇지만 영화, 책, 사진 다른 많은 것들도 사랑하죠.

르 라보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다시 찾게 하는 힘. 아무리 브랜드가 유명하고 보틀이 예뻐도 향이 마음을 끌지 못하면 금방 잊어버려요.

비결이 뭐예요?
타협하지 않으니까요. 큰 브랜드들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많은 테스트를 거치죠. 그렇지만 우린 하고 싶은 대로 하죠. 그래서 더 창의적일 수 있어요. 향에 관해선 완전 독재자예요. 전혀 민주적이지 않죠.

한국 여자들은 진한 향을 그리 선호하지 않고 향수의 잔향을 중시하죠. 그런 의미에서 르 라보는 한국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듯해요.
맞아요. 설령 진한 향을 좋아해도 맡기만 하고 실제로 뿌리진 않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르 라보는 베이스 노트가 무척 멋져요. 매장에서도 고객이 시향을 원하면 그 자리에서 뿌려 첫 향을 맡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뿌려둔 시향지의 잔향을 맡게 하죠.

향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주세요.
좀 위험하더라고 시도해봐야 해요. 친구들이 좋다는 향을 사지 말고, 직접 뿌려봐요. 문화를 갑자기 바꿀 순 없잖아요. 그러니 스커트에 한 번만 쓱 뿌리더라도, 아주 적은 양이라도 스스로 향수를 입어보세요. 그럼 알게 될 거예요.

http://www.vogue.co.kr/content/view_01.asp?menu_id=02040300&c_idx=011005150000163

출처_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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