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캐시미어 제왕의 ‘조금씩 천천히 전략’_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쿠치넬리 회장 인터뷰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 쿠치넬리 회장

‘가능한 한 빨리(as soon as possible)’로 쓰이는 영어 표현 ‘ASAP’는 최근 패션 업계의 성공 공식이었다. 자라·H&M·유니클로 등 디자인에서부터 생산, 소매 유통까지 직접 관리하면서 트렌드를 빠르게 좇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의미의 ASAP를 추구하는 브랜드가 있다. ‘캐시미어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는 ‘가능한 한 지속 가능하게(as sustainable as possible)’를 브랜드 전략으로 삼는다.

40년 가까이 된 브랜드지만, 매장은 전 세계 100여 군데만 운영한다. 새 매장을 열 때는 1년 이상 신중하게 고민한다. 상위 또는 하위 브랜드를 새로 출시하는 일도 없다. 고급 옷 소재인 ‘캐시미어’를 주재료로 삼는 것도 “캐시미어로 짠 스웨터는 함부로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느리게 걷기 때문에 좀처럼 흔들리는 일이 없다. 1978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매출이 감소한 일이 없다. 지난해 매출은 3억5600만유로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창업자 브루넬로 쿠치넬리(62·사진) 회장을 만났다. 그는 “성장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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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은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세웠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몽골제국은 로마제국이 열흘 걸려서 한 일을 고작 이틀 만에 끝내는 저력을 보였지만, 그만큼 빠르게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200~300년 이상 살아남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매년 10~20%씩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만, 그랬다간 반드시 탈이 납니다. 장인들은 매일 옷을 생산하느라 지칠 것이고, 창의성을 잃어버릴 겁니다. 그러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없게 되죠.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품질도 떨어질 겁니다. 단골을 잃을 것이고, 브랜드 이미지는 바닥을 치겠죠.”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흰색, 회색 등 무채색으로만 쓰이던 캐시미어를 연두색, 분홍색, 빨간색 스웨터로 만들어 팔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천연 원료만을 사용하고 300여명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영화배우 대니얼 크레이그 등이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다. 최고급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와 비슷한 수준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지난 2012년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했다. 쿠치넬리 회장은 “이 역시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큽니다만, 그만큼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장수(長壽)기업이 상장을 결정한 것은 이런 이유일 겁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죽을 때 그 돈을 끌어안고 무덤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돈은 기업의 미래를 위해 투자돼야지, 저 개인이나 저희 가족만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접근 가능한 명품이 진짜 명품인가?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지속 가능’ 이미지를 경영뿐 아니라 상품에도 적용한다.

“한 번 사면 절대 버리고 싶지 않을 옷, 몇 년 동안 두고두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듭니다. 잘 만들어진 옷은 아들딸, 손자손녀까지 대물림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유행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독창적이어야 합니다. 전부 똑같으면 질려버리기 때문이죠.”

쿠치넬리 회장은 그런 차원에서 “(저렴해서)살 만한 명품(affordable luxury)이란 것은 진짜 명품의 의미를 훼손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명품은 그 자체로 완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로고만 똑같이 찍은 저렴한 제품을 양산합니다. 결국 개성은 사라지고, 로고 장사만 하는 셈이죠. 이는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지속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에르메스를 보세요. 단 하나의 브랜드만 운영하면서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습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옷은 이른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고급스러운 옷’이다. 기존의 명품 브랜드가 파티용 의복이나 비즈니스용 정장에 집중했다면,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다른 옷과도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장롱에 넣어두지만 말고 좀 더 많이 입으라는 얘긴데, 그러다 보니 더욱더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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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솔로메오의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 /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공

아버지는 노예처럼 일했다

쿠치넬리 회장은 고용주로서도 독특하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인본주의(humanism)’가 회사 철학이다. 쿠치넬리 회장은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장에서 일하면서 하루 소득의 절반을 지주에게 납부해야 했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그야말로 노예처럼 일했다”고 쿠치넬리 회장은 말했다.

“아버지는 매일 밤늦게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지주로부터 모욕적인 언사를 들은 날도 많았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곤 하셨어요. 그건 제 마음을 후벼 파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윤리적인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직장 내에서 인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직원 복지를 도입했다. 일단 급여가 이탈리아 평균보다 20%가량 높다.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게 정한다. 구내식당에서는 임원부터 트럭 운전사까지 한곳에서 같이 식사하며, 하루 세 끼 와인을 포함한 따뜻한 식사를 무조건 제공한다.

쿠치넬리 회장은 “21세기에는 자본주의에 인류애가 담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페이스북 등에 불평불만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새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직원들에게 좋은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일종의 ‘선택 사항’이었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조선일보_2015. 7. 25

출처_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24/20150724018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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