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STORY] ‘패션 문외한’으로 ‘GUCCI 구원투수’ 역할… 마르코 비자리 CEO “물갈이가 능사 아니다” 수석 디자이너 내부 승진 파격

‘두 자릿수 성장’의 마법사 “나만의 경쟁력을 파악하라”

[Cover Story] ‘패션 문외한’으로 ‘GUCCI 구원투수’ 역할… 마르코 비자리 CEO
“물갈이가 능사 아니다” 수석 디자이너 내부 승진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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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케어링 그룹은 대표 브랜드인 ‘구찌’의 양대 수장을 동시에 경질했다. 10년간 간판 역할을 해온 수석 디자이너 프리다 지아니니와 6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패트리지오 디 마르코 최고 경영자(CEO)를 모두 내보낸 것이다.

양대 수장을 동시에 내보내는 것은 명품업계에서도 드문 일이다. 구찌가 2013년 이후 2년 연속 실적이 부진하자 책임을 물었다.

마르코 비자리(52·Bizzarri·사진) 신임 CEO는 구찌 부활을 위해 전격 임명된 인물이다. 그는 이전에도 ‘스텔라 매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 등 다른 명품 브랜드의 CEO를 맡아 성장을 이끌어 낸 바 있다. 별명은 ‘두 자릿수의 사나이(double-digit man)’. 맡는 기업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뜻이다. 구찌 역시 그가 경영을 맡은 올해 1분기부터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익 증가율을 기록하며 실적이 회복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명품 업계는 작년 이후 실적 악화로 허덕이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2330억유로(약 291조원)로 전년 대비 2% 성장하는 데 그쳤다. 2009년 이후 최저 성장률이다. 패션지 ‘보그’는 “브랜드로 부(富)를 과시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평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루이비통 가방의 별명은 ‘3초 백’이었다. 길에 서 있으면 루이비통 백이 3초에 하나씩 보인다는 뜻이다. 대부분 연령대의 여성들은 ‘LV’ 로고가 가방 전면에 박혀 있다는 이유로 몇 백만원을 주고 이 가방을 샀다.

이 현상은 그대로 10년 뒤 중국으로 이어졌다. 중국 여성들은 샤넬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힌 가방을 색깔별로 사들였다. 중국 남자들은 롤렉스 로고가 박힌 시계를 모델별로 수집했다. 중국에서는 바링허우(1980년대 태어난 아이들) 세대를 ‘구찌 세대’라고도 부른다. 명품업계는 소비자들의 ‘브랜드 과시 욕구’를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 로고가 박힌 물건으로 치장하는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정부의 반(反)부패 정책이 명품 소비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중국 명품 소비는 지난해 1% 감소했다.

최근 명품업계를 관통하는 화두(話頭)가 ‘세대교체’ 또는 ‘구조 조정’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LVMH그룹은 최근 주요 브랜드인 루이비통과 겐조,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를 모두 바꿨다. 에르메스도 올해 봄·여름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수석 디자이너를 교체했다. 미국의 패션 황제 랠프 로런은 48년 만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 CEO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명품 업계 개혁의 최전선에서 구찌를 이끌고 있는 것이 비자리 CEO다.

명품 기업마다 투입돼 기업을 살려놓고 다음 기업으로 향하는 그는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다. 패션 업계 출신조차 아니다. 컨설턴트 출신인 그는 케어링 그룹에 들어오기 전까지 액센추어에서 은행, 판매, 마케팅 등을 담당했다.

‘나는 패션 문외한’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지난달 24일 행사 참석을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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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픽이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파악하라

―맡는 기업마다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이끌어냈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로 말할 수 있는 비결은 없습니다. 회사마다 브랜드 가치, 팀원 성격, 기업 분위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CEO로 한 회사에 들어갈 때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방법을 똑같이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 회사에 들어가서 먼저 내 위치부터 파악합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회사만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요즘같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까지 맡아온 기업에서는 어떤 전략을 쓰셨나요?

“스텔라 매카트니의 기업 경쟁력은 ‘친(親)환경 이미지’였습니다. 가죽, 모피, 깃털 등 동물 소재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합성 가죽, 인조 모피 제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반면 보테가 베네타의 매력은 ‘질 좋은 가죽 가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가죽 장인들을 대거 채용해 고급 핸드백 제작에 집중했습니다. 두 회사에 정반대 정책을 사용한 셈입니다.”

―그럼 이번에 맡은 구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분석했나요?

“100년에 걸친 ‘역사’와 ‘패션 리더’의 위치, 그리고 역사와 전통을 가진 ‘로고’입니다. 로고 없는 명품이 대세라고 모든 제품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구찌의 로고는 100년간 제품에 붙어서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훌륭한 자산이고, 다른 브랜드들이 부러워하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고객들은 구찌 로고만 박혔다고 가방을 사지 않습니다. 로고를 제품 디자인과 연관성 있게 활용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최근 구찌의 가방을 보면 로고가 디자인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자산을 활용해 동시대 패션으로 연결하는 것, 이것이 구찌의 전략이고 경쟁력입니다.”

비자리 CEO가 구찌를 맡은 후 보인 가장 파격적인 행보는 스타 디자이너 대신 무명(無名)인 내부 직원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한 것이다. 명품 업계에서는 브랜드를 혁신할 때, 외부에서 활동 중인 간판급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그 디자이너가 자기 사단(team)을 데려와 제품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브랜드 전면 쇄신을 외치는 상황에서 내부 승진은 그만큼 드문 일이다. 미켈레 본인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짐을 싸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던 덕도 컸다. 올해 봄까지는 제품 디자인을 맡기로 했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밀라노 패션쇼를 5일 남겨놓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나가버린 것이다. 아직 후임 후보자 물색도 덜 끝난 상황에서 지아니니가 나가버리자, 비자리는 디자인팀 서열 2위이던 미켈레에게 쇼를 맡겼다. 미켈레는 단 5일 만에 쇼를 준비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자리 CEO에 따르면 실사판 ‘프로젝트 런웨이(패션쇼를 만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를 방불케 했다. 쇼가 끝난 후 미켈레는 수석 디자이너로 정식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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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산드로 미켈레 수석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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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가 능사 아냐… 내가 찾는 사람 내부에 있을 확률 높다

―무명이던 미켈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한 것은 큰 화제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미켈레는 제가 받은 후보군 명단에 없었습니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내로라하는 유명 디자이너들 이름이 후보군에 있었습니다. 미켈레는 지아니니를 도와 구찌를 이끌어 온 인물입니다. 저는 원래 윗사람이 바뀐다고 그 밑에서 일하던 사람을 다 내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켈레에게 ‘신임 수석 디자이너가 오더라도 당신이 회사를 나가야 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라’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그와 대면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나눈 대화는 예상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전 로마 출장 중이었는데, 미켈레도 로마에 있다고 해서 잠깐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30분 정도 예상한 대화는 4시간 동안 계속됐습니다. 우리는 구찌의 문제점, 전략, 비전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같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도 저는 미켈레와 여러 차례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팀 내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전 수석 디자이너를 외부에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바꿨고, 지금은 그 결정이 옳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혁신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부 인사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면서도, 기업에 대한 충성심도 갖고 있어, 변화를 잘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수석 디자이너가 최종 작품을 선택할 때 CEO 본인도 참여하나요?

“아니요(그는 아니라는 말을 5번쯤 반복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경영자입니다. 디자인 업무는 수석 디자이너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수석 디자이너의 작품이 CEO인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제가 해야 할 일은 디자인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人事)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그럼 경영자로서 생각하는 ‘구찌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요?

“저는 구찌가 패션계에서 권위를 되찾기 바랍니다. 과거 밀라노 패션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는 구찌였습니다. 패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구찌였습니다. 저는 구찌가 패션계의 추종자(follower)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패션계의 선도자, 리더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제품의 품질을 구찌의 장인들이 지켜주길 바랍니다.”

―장인 정신보다 패션 리더로서 지닌 가치를 더 높게 보나요?

“둘 다 중요합니다. 명품 브랜드에 품질과 장인 정신은 기본입니다. 장인 정신과 패션 리더의 가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장인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최고의 장인들과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재료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걸 망친 적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구찌에 높은 품질을 기대하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품질을 언제나 제공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인 정신만 강조해서 물건이 팔리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패션 리더로서 역할이 있어야 우리가 원하는 고객층이 우리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패션 리더였나요?

“아닙니다(웃음). 사실 이 자리는 어릴 때부터 제가 꿈꿔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액센추어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지인(知人)의 요청으로 자회사 설립, 유통 전략 등을 맡으며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이전에 저는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한 적도 없고 그와 관련된 성장 배경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고, 사업 모델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저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직원들을 어떻게 꾸리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직관력을 가지고 사람을 이해하고 적절한 자리에 사람을 배치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물론 소비자의 시각에서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그런 제품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것을 만들 사람을 채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창의적으로 제품을 만들 수는 없지만, 창의적인 사업가가 될 수는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가라

―구찌는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편집 매장 입점이나 인터넷 판매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패션 업계에서 권위를 갖고자 한다면, 패션 리더들이 물건을 구매하는 곳으로 우리도 가야 합니다. 그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2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유통이란 브랜드가 시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은지 판단한 다음, 전략적으로 유통 채널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품 업계 판매가 주춤하자 위기설이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명품 업계는 과거 두 자릿수로 성장하다 최근 한 자릿수 성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이를 두고 위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위기가 아닙니다. 위기는 매출이 꺾이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안정화되는 시기입니다. 앞으로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가려질 것입니다.”

―중국 정부의 반부패 정책에 따른 타격은 없습니까.

“중국 소비자들이 최근 조심스럽게 물건을 구매하고 있지만, 아직도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지속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안정된 시장입니다. 하지만 한국이 아시아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또 다른 주력 시장입니다. 과거 아시아 명품 시장을 주도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최근엔 한류를 바탕으로 한 한국입니다. 한국 연예인들이 뭘 입느냐에 따라 아시아 시장 판도가 바뀝니다.”

―명품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시간입니다. ‘명품(luxury)’이라는 가치를 갖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시간과 그에 따른 역사가 필요합니다. 신규 브랜드들이 명품 시장에 진출하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품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를 차별화해야 합니다. 명품 업계에서 제품에 투자한다는 것은 제조 업계에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자금을 투자해 기계를 새것으로 바꾼다고 해서 제품이 좋아지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품을 만드는 것은 장인, 즉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품에 대한 투자는 곧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최상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출처: 조선일보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06/20151106021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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