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L TV] GUCCI, The Cruise 2016 Campaign — The Director’s Cut

게시일: 2015. 9. 16.

Following a guest into a dance party in a villa outside Florence, the film directed by Glen Luchford captures the contemporary essence of Alessandro Michele’s Cruise 2016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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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황량한 들판에 우리는 섰다

황량한 들판에 우리는 섰다
생과 사가 서로 교차하는 순간
스스로 사라지는 영혼에 의탁해
내 마음의 소재를 찾는다
돌아오는 삶의 뿌리를 붙잡고
풀리지 않는 외로움에 허공을 헤매네
외로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을 꾸나니
팔을 움직여 슬픔을 호소해 본다
강산은 이미 가을빛으로 물들고
들판의 약초는 단지 슬픈 빛이네
적적한 집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다란 나무는 외로운 가지를 뻗치고
저녁의 그리움을 담담히 노래하네
바람과 이슬은 시(詩)속에 파묻힌다

  • 나쓰메 소세키의 ‘회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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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성곡미술관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비비안 마이어의 ‹내니의 비밀 The Revealed World of Vivian Maier›전과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 Beautiful›전을 동시에 개최_2015. 9. 20_성곡미술관

성곡미술관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비비안 마이어의 ‹내니의 비밀 The RevealedWorld of Vivian Maier›전과 게리 위노그랜드의 ‹여성은 아름답다 Women AreBeautiful›전을 동시에 개최한다. 두 전시는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산 두 사진가의 사진과 필름으로 구성된 대규모 특별전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의급격한 변화 속에서 한 사람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유모 ‘내니’로서, 또 다른 사람은당대에 주목받았던 유명한 남성 사진작가로서 그 대비가 확연히 드러난다.성곡미술관은 두 사진가의 시선으로 완성된 작품들을 통해 무덤덤한 일상과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 더 창의적이고 풍요롭게 바라 볼 수 있는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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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 비비안 마이어 ‹내니의 비밀›
Vivian Maier ‹The Revealed World of Vivian Maier›

일생을 어린아이를 돌보는 유모 ‘내니’로 생활을 연명하며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살았던 비비안 마이어의 일상을 찍은 사진전이다. 전문적인 사진 교육을 받지 못하고,아마추어로서 틈틈이 찍은 사진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와여성 특유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용 작품이 아닌본인의 순수한 욕망으로부터 타인의 인생을 몰래 엿보듯 은밀하게 촬영된 사진이무려 15만 롤 이상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평생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비비안 마이어의 열정적인 삶을 함께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포암foam 미술관을 비롯해 베를린, 런던, 오슬로, 뮌헨, 뉴욕, 로스엔젤레스, 부다페스트,이탈리아, 벨기에, 모스크바, 토론토, 스웨덴 등지에서 전시가 열렸으며, 현재도 세계유수 미술관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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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undated
©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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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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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관 게리 위노그랜드 ‹여성은 아름답다›
Garry Winogrand ‹Women Are Beautiful›

‘스트레이트 포토그래피 straight photography’ 의 거장이며, ‘거리 사진가 streetphotographer’의 대부인 게리 위노그랜드의 1960년대 격동기의 시대상을 잡아낸‘미국의 사회적 풍경화’ 사진전이다.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당시 여성들의 일상의모습을 계산되지 않은 본능적 샷으로 담아낸 세기의 사진 시리즈 ‹여성은 아름답다›중 85점 전체를 빈티지 프린트로 감상할 수 있다. 뉴욕 모마 MoMA(1988)와 메트로폴리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4), 파리 주드폼 Jeu de Paume(2014) 등 에서 전시되었던 역사적인 작품들을 올 여름 성곡미술관에서 다시 만나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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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Are Beautiful ⓒ Garry Winog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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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Are Beautiful ⓒ Garry Winog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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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L TV] Longchamp Fall 2015 Campaign, ALEXA CHUNG HEADS TO MIAMI FOR LONGCHAMP’S LATEST

For its fall 2015 campaign, French label Longchamp headed to Miami’s Wynwood District for images inspired by the colorful city. Photographed by Max Vadukul, Alexa Chung is back for her fourth consecutive season as the face of brand. The advertisement spotlights a new version of Longchamp’s Le Pliage® Héritage Mini in a three-tone color palette and graphic lines, influenced by the Miami backdr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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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伊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윙켈만 CEO 인터뷰_대중의 욕망을 극소수에게 팔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車
伊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윙켈만 CEO

이탈리아 스포츠카 람보르기니(Lamborghini)는 알고 보면 불편한 차다. ‘시저 도어(scissor door)’라고 불리는 문은 수직으로 열려 보기엔 멋있지만 타고 내리기 쉽지 않다. 빠른 스피드를 목적으로 하는 스포츠카답게 운전석이 바닥에 가깝기 때문에 승차감은 거칠고, 두 사람이 겨우 타는 등 공간의 제약도 많다. 시속 300㎞가 넘는 속도를 자랑한다지만, 막상 일반 도로에서는 속력을 뽐낼 기회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불편한, 튀는 원색의 ‘삼엽충’ 스타일 차를 ‘꿈의 차’라고 말한다.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인 람보르기니의 판매량은 불경기인 상황에서도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창립 이래 가장 많은 차를 팔아 6억2900만유로(약 866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름만으로 소비자를 설레게 만드는 브랜드의 힘은 어떻게 구축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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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보르기니가 2013년 4월 출시한 아벤타도르 LP720-4 40 애니버서리오 모델로, 전 세계 100대 한정 판매됐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람보르기니 본사에서 스테판 윙켈만(Winkelmann·51)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피아트 그룹을 거쳐 2005년 람보르기니 CEO가 됐다. 짙은 감색의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윙켈만 대표는 패션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윙켈만 대표는 지난해 이탈리아 경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기사 대십자 훈장(Knight Grand Cross)’을 받았다.

그는 “창립 초기에는 자동차의 성능과 기술력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여느 럭셔리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브랜드 가치가 진화하면서 이제는 브랜드 이름 때문에 제품이 팔릴 정도로 회사가 성장했다”며 “전반적인 경기의 흐름을 걱정하기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를 최상위로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를 사는 것”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람보르기니 자동차가 제공하는 기능이 아니라 ‘심리적 만족’을 사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꿔 말하면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사는 것이라는 얘기다.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명품을 사는 고객은 제품의 기능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이 알아봐 주고, 동경해주는 시선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니즈(needs·실용적인 필요성)가 아닌 원츠(wants·감성적인 소망)의 시대이기 때문에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가 의미하는 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싼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실용성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웃음) 애초에 실용성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10년 전만 해도 람보르기니를 직접 몰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구매자의 대다수가 수집가였지요. 한 명의 구매자가 열대 이상의 람보르기니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실용성을 따진다면 한 사람에게 굳이 한 대 이상의 자동차가 왜 필요하겠어요. 람보르기니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이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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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산업은 경기를 많이 탈 것 같은데, 최근 불황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브랜드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상당히 독특한 시장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어요. 극도로 소수의 고객만이 우리 제품을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 시장과는 전혀 다른 판매 추세를 보일 때가 잦고, 이 때문에 판매 전략도 다릅니다. 물론 과거에는 경제 상황에 따라 매출이 영향을 받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고성능 차량’을 만드는 신생 회사였던 창립 초반과 지금의 람보르기니는 달라요.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전반적인 경기의 흐름에 주목하기보다는 브랜드의 가치가 늘 최상위에 있게끔 신경 씁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럭셔리 재화의 존재가 없었던 적은 없어요. 어떤 시대에도 남들보다 더 가치 있는 상품을 가지려는 계층은 존재했고, 소유한 물건으로 스스로를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상황을 걱정하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품’과 ‘브랜드’ 중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창립 초반에는 제품에 집중해야 하지만, 그 이후에는 브랜드가 더 중요합니다. 처음 람보르기니가 만들어졌을 때는 제품이 우선이었습니다. 더 빠르고 튼튼한 차를 만드는 게 전부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1966년 출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였던 ‘미우라’같이 전설적인 스포츠카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스포츠카를 원하는 고객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차가 ‘기술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이 알려지고 브랜드 이미지가 진화하면서 브랜드 자체 때문에 람보르기니를 구매하려는 고객이 더 많아졌어요. 이는 상당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보통 일반인이 승용차를 살 때는 구매 전에 딜러에게 충분히 상담을 받지요? 그런데 우리 고객 중에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매장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어떤 성능을 가진 자동차가 아니라 람보르기니를 원합니다. 그래서 제품에 대해 특별히 질문하지도 않아요.”

‘동경(憧憬)’을 판매한다

마케팅의 기본은 타기팅이다. 물건을 살 만한 사람을 상대로 광고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람보르기니는 다르다. 오히려 물건을 살 만한 사람들 외의 일반 대중에게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진입 장벽은 높지만, 브랜드의 이름 자체는 누구나 알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살 수 있는 고객이 극소수인데, 일반 대중에게 광고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마케팅 원칙과는 다른 것 아닌가요.

“제가 정의하는 력셔리는 ‘보상’입니다. 필요해서 사는 물건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지요. 내가 이 브랜드의 제품을 가졌다는 만족감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고객이 람보르기니를 샀을 때 충분한 보상을 느낄 수 있도록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항상 대중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요.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제품에 유행도 있고, 항상 남들에게 ‘갖고 싶은’ ‘멋진’ 대상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요.

우리는 모터쇼 등을 통해 항상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일반 대중이 람보르기니를 사는 일은 드물어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장난감 모형이나 람보르기니 로고가 박힌 티셔츠, 모자 등 다양한 소품으로 대리 만족하며 ‘언젠가는 꼭 이 차를 사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대중의 관심과 동경을 얻을수록 실제로 람보르기니를 구매하는 고객이 얻는 보상도, 심리적인 만족도 당연히 커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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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윙켈만 CEO

많이 팔면 력셔리가 아니다…”시장의 수요보다 판매는 적게”

람보르기니는 ‘적게 팔고 마진을 많이 남긴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지난 한 해 가장 많은 차를 판매했는데, 그 사상 최대 기록이 총 2530대다. 경쟁사로 꼽히는 페라리가 매년 7000대 정도 판매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람보르기니는 지금보다 생산량을 늘리겠지만, 적정 수준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공급을 늘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가 되면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둘러보니 생산 규모가 매우 작더군요. 사업을 키우려면 더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요보다 적게 파는 것이 우리 원칙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보다 적게 공급해야지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귀한 존재일 때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흔히 보이는 차가 되어서는 안 돼요. 우연히 길에서 람보르기니를 보았을 때,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라움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살 수 있는 소비자가 적은 정도가 아니라 실물을 직접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 최상위 력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는 원칙입니다.

현재 우리 시설에서 하루에 생산하는 차량은 다섯 대에서 많아야 여섯 대 정도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서너 대 정도였는데 많이 늘어난 셈이지요. 사업 확장을 위해 생산 규모를 약간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빠른 속도로 생산량을 늘리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적게 파는 것이 원칙이면 사업이 커지는 데 한계가 너무 큰 거 같은데요?

“지난해 람보르기니가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신흥 시장에서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람보르기니가 진입하지 않은 시장이 많아요.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은 미국, 이탈리아, 독일, 영국, 중동, 중국 순서입니다. 러시아만 해도 아직 세단형 자동차가 주류이지 스포츠카가 많지 않습니다. 한국도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지요. 한국에 판매된 람보르기니는 175대로 알고 있습니다. 이 밖에 수많은 신흥국에서도 람보르기니는 두 자리 숫자 정도로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추가 판매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매년 새로운 모델도 내놓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매출의 20%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는데, 기존보다 좀 더 개선된 제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요즘 소비자의 패턴을 분석해보니, 과거에는 수집을 위한 구매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실제로 운전하기 위해 람보르기니를 사는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이 때문에 일상 운전에 적합한 모델을 선보이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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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보르기니는 모터쇼를 통해 새로운 자동차를 공개한다.

한눈에 우리 제품임을 알게 만들어라

람보르기니의 자동차는 굳이 황소가 그려진 엠블럼을 확인하지 않아도 어디 브랜드인지 알 수 있다. 디자인 자체가 눈에 띄고 다른 회사 제품과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직으로 열리는 문은 람보르기니를 상징하는 특징 중 하나다. 자동차의 색상도 일반적이지 않다. 주황, 노랑, 라임 등 화려한 원색은 어디에서든 눈에 띈다.

―경쟁사인 페라리와 비교해 볼 때 람보르기니는 자동차 모양이 특색이 있습니다.

“눈에 확 띄는 자동차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람보르기니 자동차는 한눈에 알아보기 쉬워요. 디자인도 좀 더 선명하고, 자동차 운전석도 더 낮아요. 길거리에서 람보르기니를 발견했을 때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경쟁 상대로 보고 비교하곤 하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두 브랜드의 매력은 확연히 달라요. 이 때문에 서로를 갉아먹는 구조가 아니라 스포츠카업계의 파이 자체를 키워줄 수 있는 좋은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페라리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봐요.”

―자동차의 모델명을 투우(鬪牛) 소에서 따온 것도 독특합니다.

“맞아요. 엠블럼이 투우 소를 형상화해서 만들었듯이, 자동차 모델명에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람보르기니 자동차는 한 마리의 ‘성난 황소’를 상징합니다. 사납지만 용맹하고 빠르지요. ‘가야르도’ ‘레베톤’ ‘무르시엘라고’ ‘우라칸’ 등 대다수 차종의 이름은 투우 소에서 따왔습니다. 이는 창업주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때부터 시작된 전통이고, 폭스바겐에 인수된 이후에도 우리는 그의 철학을 지켜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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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람보르기니 본사

람보르기니는…

람보르기니는 1962년 수퍼카 마니아였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창립했다.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로 한 차례 파산했지만 스위스 투자가 밈란 형제가 인수해 히트작을 만들어내며 유명 브랜드로 올라섰다. 그 후 크라이슬러, 인도네시아 부호 토미 수하르토 등 여러 주인을 거쳤고 1998년부터는 폴크스바겐그룹이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2015. 8. 29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28/20150828015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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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전통·현대의 절묘한 조화… 400년 화장품 회사 살리다 / ‘수도사들의 약국’서 시작한 화장품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알판데리 회장 인터뷰

‘수도사들의 약국’서 시작한 화장품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알판데리 회장

화장품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의 기원은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2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한 수도사들이 직접 약초를 재배해 약재, 연고 등으로 만들어 지역 주민들을 도운 게 시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세계 최초의 약국 중 하나로 알려졌다.

1612년부터 일반인들에게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403년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약국으로 시작은 했으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의약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부 관리용 화장품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노선을 바꿨다. 제품이 ‘피부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8세기에는 러시아, 인도, 멀리 중국에도 수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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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식 레이싱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에우제니오 알판데리 회장. 인터뷰를 마치고 본사 매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불러세워 사진을 찍었다. / 피렌체(이탈리아)=윤형준 기자

그러나 한 나라의 왕조도 400년쯤 지나면 처음 위세를 잃고 사그라지듯, 산타 마리아 노벨라도 수차례 위기를 맞았다. 14세기에는 유럽에 흑사병(黑死病)이 돌았고, 19세기에는 이탈리아 정부가 경영권을 몰수하기도 했다. 가장 심각했던 위기는 비교적 최근 일이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혁신이 늦었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1980년대 후반 매장 한 곳, 직원 다섯 명이 일하는 동네 화장품 가게로 전락해 버렸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피렌체에 살던 기계 수리공 에우제니오 알판데리(Alphandery·67)였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운영하고 있던 스테파니 가문과 가깝게 지내던 그는, 고장난 기계를 수리하다가 ‘400년 역사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는 이유로 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당시 회사는 마치 무법 지대(no man’s land) 같았다”고 회상했다.

“경영 체계는 엉망이었고, 직원들은 제멋대로 일했어요. 50~60대 단골만 매장을 찾아왔죠. 20년쯤 지나 단골들이 세상을 떠나면, 자연스레 회사도 고사해버릴 지경이었어요.”

알판데리 회장은 26년간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맡아, 전 세계 65개 매장, 직원 450여 명이 일하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키워냈다. 최근 이탈리아 피렌체 본사에서 그를 만나 문 닫을 회사를 부활시킨 경영 비법을 물었다. 그는 ‘차근차근 하나씩’이 성장 전략이었다고 설명했다.

“저희는 아무리 급해도 서두르지 않았어요. 저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새 사업을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품을 팔고 돈을 벌면, 그걸 고스란히 회사에 투자했어요. 수익 내기를 포기하고 제품을 개선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그 덕에 조금씩 품질이 좋아졌고 더 많이 팔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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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우제니오 알판데리 산타 마리아 노벨라 회장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제공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꾸셨나요?

“산타 마리아 노벨라가 당시 얼마나 구식이었냐면, 제품을 만드는 기계가 너무 낡아서 곧바로 박물관에 보내도 될 상황이었어요. 제품 만드는 기계부터 새로 설계했어요.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고, 직접 기계를 설계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저희 대표 제품 중에 ‘장미 화장수(水)’라는 게 있는데, 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14세기에 처음 나와 지금도 똑같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한 번 만드는 데 일주일씩 걸렸다면, 지금은 절반도 걸리지 않죠. 물론 당연히 한 번에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요. 품질 개선에도 힘썼습니다. 예컨대 비누를 만들 땐 완성된 제품을 3일간 숙성·건조해 줍니다. 그렇게 하면 비누 안에 남아 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비누가 아주 단단해집니다. 쉽게 무르지 않고 더 오래 쓸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만드는 곳은 저희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신제품도 개발합니다. 최근에는 성형 보조 스킨케어 제품군을 새로 출시했는데, 성형수술을 받은 뒤 피부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용도로 쓰입니다.”

―왜 14세기 제조 방식을 그대로 씁니까? 그것도 개선할 수 있지 않았나요?

“제품 품질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형편없는 제품이었다면 요즘 소비자들이 저희 제품을 써줄 리 없죠. 저는 오히려 옛날 방식 제품이 저희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는 일부러 당시 수도사들처럼 제품 원료를 직접 재배해서 씁니다. 전부는 아니고, 20% 정도? 물론 비용은 적지 않습니다. 정원을 관리하고, 약초를 재배하고, 제품 관리까지 해야 하죠. 그러나 이를 통해서 저희가 가진 전통을 유지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아예 매장을 일종의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회사에 있던 유서 깊은 기계나 문헌을 전시하고, 매장으로 활용합니다. 지금 이곳 매장은 피렌체에서 꼭 들를 만한 관광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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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타 마리아 노벨라 본사 매장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제공

구전(口傳) 마케팅만 400년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400년간 끊임없이 고객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객을 끌어모으는 방법은 요즘 유행하는 방식이다. 알판데리 회장은 “핵심은 소문 마케팅(viral marketing)”이라고 말했다.

“저희는 광고를 안 합니다. 샘플을 공짜로 퍼주는 일도 없습니다. 주기적으로 연예인을 내세운 TV 광고를 찍고, 샘플을 퍼주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사는 소비자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제품 안에 그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저희는 광고 대신 소문의 힘을 믿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운 제품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주변에 권할 겁니다. 요즘 IT가 발전하면서, 소문 마케팅이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집중하고 있는데, 산타 마리아 노벨라를 언급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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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화장품에 들어가는 약초를 재배하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정원. 직원 휴식 장소로도 쓰인다. / 피렌체(이탈리아)=윤형준 기자

할머니가 쓰던 걸 사라지게 둘 수 없었다

알판데리 회장은 멋쟁이 노신사였다. 베이지색 리넨 정장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그가 출퇴근할 때 타는 최신식 레이싱 오토바이였다. 회장 집무실이 있는 본사 공장은 본사 매장이 있는 피렌체 도심과 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를 오가는 용도로 장만했다고 알판데리 회장은 말했다. 정장에 배낭을 메고 오토바이를 탔는데, 그 모습이 도무지 환갑 넘은 노신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처음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처음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건 제가 일곱 살 때였어요. 증조할머니가 제 손을 붙잡고 매장에 찾아갔죠. 그때 냄새가 참 좋았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할머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크림을 매일 바르셨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여기서 일할 줄은 몰랐죠(웃음). 실제로 제가 이 회사와 관계를 맺게 된 건 26년 전 일입니다. 민트향 사탕을 만드는 기계가 고장 났다면서 고쳐달라는 의뢰를 받았죠. 정확히는 만든다기보다 찍어낸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쿵’ 하고 찍으면 사탕 한 알이 나오는 식이었는데, 1분에 56개밖에 못 만들어냅니다. 엄청나게 구식 기계였죠. 고치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낡은 기계가 아직도 돌아가는 걸 보면서 ‘회사가 참 많이 기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쓰던 화장품이 이렇게 사라지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 봐도 망해가는 회사에 개입하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새것을 사는 건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옛것을 복원하고 더 좋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게 산타 마리아 노벨라는 낭만이었습니다. 사업적으로 보면 도태될 건 빨리 포기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게 옳은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로맨틱하지 않아요. 저는 도전 정신으로 시작했고, 그렇게 난관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맞습니다. 도전은 제 취미 생활입니다.”

출처_조선비즈 2015. 7. 18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7/2015071702017.html?weekly_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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